터키에서 가장 낭만적인 지중해 연안의 길과 도시들
터키 남부 지중해 연안의 리키안 웨이(Lycian Way)는 페티예(Fethiye)와 안탈리아(Antalya)사이까지 약 500km의 길로 산악지방을 걷는 것이다. 걸으며 역사와 문화를 접하는 길인데 반면에 그 구간의 바닷길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접하는 길이다. 아름답고, 낭만적인 것만 따진다면 리키안 웨이보다 훨씬 좋은 길이다. 햇살 부서지는 지중해 풍경, 아담하고 예쁜 도시, 한적한 마을, 해안가의 오렌지 나무, 감나무, 부겐베리 꽃들, 투명하고 깨끗한 남색의 지중해는 황홀하기 그지없다. 자전거를 타고 가든, 버스를 타고 가든, 버스를 타고 가다 내려서 걸어가든 이길의 풍경은 감탄사를 자아낸다.
“여름철 휴가지, 허니문 여행지, 페티예(Fethiye)”
튀르키예 남서부에 위치한 페티예는 여름철 휴가지로 이름 높은 곳이다. 터키석처럼 맑은 바다와 환상적인 자연환경을 가진 페티예는 터키인은 물론 유럽인들 사이에서 허니문 명소로 유명하다. 페티예는 연중 300일 이상 해가 나고 연평균 기온 21도, 겨울에도 평균 10도 이상을 유지하는 온화한 기후다. 바다에는 파도가 거의 없어 스킨 스쿠버, 보트 투어, 서핑, 바다 수영 등 다양한 해양 스포츠를 즐길 수 있다. 이곳에는 나비 계곡(Butterfly Valley)도 있다. 350m 높이의 두 절벽 사이에 자리한 하얀 백사장과 푸른 바닷물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는 이곳에 7월부터 9월까지 계곡 근처에 서식하는 수천 마리의 나비가 날아다녀 나비 천국에 온 느낌이 든다.
또한 페티예 남부의 욀루데니즈(Ölüdeniz)는 네팔 포카라, 스위스 인터라켄과 함께 세계 3대 패러글라이딩 성지로 꼽힌다. 해발 2000m의 비바다그(badadag) 산에서 욀루데니즈 해변 방향으로 날아오르면 구불거리는 산맥과 커다란 호수에 지중해의 절경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특또 해변 끝자락에는 지중해에서도 손에 꼽히는 아름다운 해변과 블루 라군(Blue Lagoon)이 있다. 청록색의 바다에서 바다 수영을 즐기며 거북이를 만나는 이색적인 경험도 할 수 있다
“소박하고 예쁜 카쉬(Kash)”
페티예에서 안탈리야 쪽으로 가다 보면 나오는 카쉬는 아름다운 해변 마을이다. 카쉬는 언덕에 있는 도시로 덥고 건조한 여름과 온화하고 습한 겨울의 전형적인 지중해서 기후이며 오렌지, 레몬, 바나나가 자란다. 꿀과 아몬드가 나고 광대한 소나무 숲도 있다. 바다와 어우러진 아름다움 풍경 때문에 많은 관광객들이 이곳에 와서 휴식을 취해 호텔과 게스트 하우스가 많은 관광지다. 이곳은 최고의 해변을 자랑하지는 않지만 온화한 분위기가 매력이다. 다이버들에게는 해저 난파선 다이빙과 수중 자연체험을 할 수 있고 다양한 보트 여행, 카약 투어 및 하이킹도 즐길 수 있다.
“이스탄불 다음으로 여행자들이 찾는 안탈리아(Antalya)”
이곳은 인구 약 220만 명의 큰 도시다. 인구로 볼 때 이스탄불(1400만), 앙카라(500만), 이즈미르(400만), 부르사(280만)에 이어서 다섯 번째로 큰 도시다. 유럽 관광객들에게 이스탄불 다음으로 가장 유명하고 인기가 많은 튀르키예의 도시다. 맑고 깨끗한 지중해와 고대 로마 유적들을 접할 수 있고 멀지 않은 곳에 파묵칼레도 있기 때문이다. 도시 자체의 치안과 인프라도 좋은 편이다.
옛날 로마, 동로마 시절부터 소아시아 남해안 지역을 담당하는 해군기지였고 국제 무역항으로 번성했으며 13세기부터 셀주크 튀르키예에 점령당하면서 튀르키예화 되었다. 그런 역사를 갖고 있기에 역사 유적지도 많다. 시내에는 하드리아누스 문, 안탈리아 고고학 박물관, 칼레이치 구도심, 뒤덴 폭포 등의 볼거리가 있다. 기후가 온화하여 겨울에도 영하로 떨어지지 않는,지중해성 기후를 지니고 있는데 안탈리아 근교에는 기독교의 사도 바울이 들렀던 페르게 유적지나 고대 로마 원형극장 유적이 있는 아스펜도스 유적지에 관광객들이 많이 오고 있다.
“타르수스(Tarsus)“
타르수스는 지중해 연안에 있는 도시가 아니라 약간 내륙으로 들어가 있지만 바닷길을 따라가다 들를 수 있는 곳이다. 이곳은 기독교를 이방인들에게 적극적으로 전파한 사도 바울의 고향이다. 신약 성서에는 ‘닷소’로 표기된다. 아다나에서 서쪽으로 약 40㎞ 정도 떨어진 이곳은 도시 한가운데에 하반신은 뱀이고 상반신은 사람인 뱀의 왕 ‘샤흐메란’의 동상과 못이 있다. 옛날 이곳을 통치하던 왕이 병들자 샤흐메란을 잡아먹었는데, 아직도 그들의 왕이 죽었는지 모르는 이곳의 뱀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되면 모두 타르수스를 공격하게 된다고 한다.
이곳에서 얼마 안 떨어진 곳에는 클레오파트라의 문도 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당한 후 여왕 클레오파트라는 이집트 왕국을 살리기 위해 소아시아(터키)와 이집트를 지배하던 안토니우스 편에 붙는다. 기원전 31년 악티움 해전에서 안토니우스를 지원하기 위해 클레오파트라가 군대를 이끌고 온 곳이 바로 타르수스였는데, 전쟁에서 패한 클레오파트라는 자신의 가슴을 독사가 물게 하여 자살하고 만다. 이 클레오파트라의 문은 바울의 고향에 있다고 해서 언제부턴가 ‘바울의 문’으로 불려 왔다고 한다.
바울의 집은 그곳에서 걸어서 십분 거리인 ‘예니 자미’란 모스크 근처에 있다. 철문 안에 매표소가 있고 40∼50평쯤 되어 보이는 정원이 깔끔하게 가꿔져 있는데, 집 안에는 바울이 사용했다는 조그만 우물과 하얀 수염이 그려진 바울의 초상화도 보인다. 지름이 1m도 안 되는 우물은 깊이가 35m로, 수천 년 동안 마르지 않고 있다. 바울은 유대인이었으나 태어날 때부터 로마 시민이었다. 그의 원래 이름은 사울이었다. 사울은 유대교 바리새파에 속해 있었는데, 예수는 유대교의 바리새파를 가혹하게 비판했었다. 사울은 자신들을 공격하는 예수와 그 신도들을 잡는 데 앞장섰는데 어느 날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3일 동안 눈이 멀고, “사울아, 사울아, 네가 나를 왜 핍박하느냐”라는 말을 듣게 된다. 그 후 바울로 이름을 바꾼 그는 예수를 믿게 된다. 그후 20년 동안 그는 적극적으로 기독교를 전파하다가 로마에서 순교하게 된다.
그러나 처음에 베드로와 신자들은 바울이 자신들을 잡아넣기 위해 음모를 꾸민다고 판단해서 자신들을 찾아온 바울을 쫓아냈다. 결국 그는 고향 타르수스로 돌아와 기도하고 사색하며 10년 동안을 외톨이로 지내다가 안타키아(안디옥)로 가서 일년을 머물렀고, 마침내 교회 지도자들로부터 이방인 선교사역을 인정받게 된다. 젊은 바울은 한때 자신의 세계가 무너진 상태에서 새로운 세계로 진입하지 못한 채 십 년이란 세월을 고향 타르수스에서 보냈다. 그 고독한 세월을 그는 무슨 생각을 하며 보냈을까? 타르수스의 거리를 걷다 보면 어딘가에 바울의 발걸음과 숨소리가 배어 있는 것 같다.
“아다나 케밥으로 유명한 아다나(Adana)”
이곳은 해변이 아닌 분지에 있어서 체감 더위가 매우 높고 습한 곳이어서 가난한 집도 에어컨은 있다고 한다. 매우 큰 도시인 이곳에는 옛날부터 아르메니아인이 많이 살고 있는데 범죄율이 다른 지역에 비해서 높은 편이라고 한다. 아다나 국제 영화제가 유명해서 이 시기에는 외국인들이 많이 오는데 이곳은 아다나 케밥 등이 유명하며 요리가 발전했다. 아다나케밥은 양고기와 양고기지방을 다져서 넓적한 꼬챙이에 붙여서 굽는 요리로 터키 어디서나 ‘아다나’ 케밥이 유명하다.
“요나가 큰 물고기 뱃속에서 튀어나온 곳, 이스켄데룬(Iskenderun)”
아다나에서 버스를 타고 지중해를 따라 동쪽으로 달리다 보면 이스켄데룬이란 도시가 나온다. 이 도시는 해변의 도시로 기독교 구약 성서에서 큰 물고기가 요나를 먹고 3일 만에 토해냈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예언자 요나는 여호와로부터 아시리아의 수도 니네베로 가서 그곳이 멸망할 것임을 경고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러나 이 사명을 회피하고 배를 타고 바다로 달아나다 태풍을 만나고 사공들에 의해 바다속으로 던져진다. 요나는 큰 물고기에 먹혀 뱃속에서 3일을 지내다 육지로 토해진 후에야 여호와의 계시를 실행한다. 기사회생한 요나의 전설이 서려 있는 이스켄데룬은 현재 평화롭고 아름다운 해변 도시다.
”초대 기독교 교회인 ‘안디옥 동굴 교회’가 있는 안타키아(Antakya)”
이스켄데룬에서 한두 시간 더 동쪽으로 달리면 안타키아가 나온다. 전체가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인데, 기독교 초대교회인 성 베드로 교회는 시내에서 약 2㎞ 떨어진 바위산 밑에 있다. 이곳을 기독교에서는 ‘안디옥 교회’라 부르고 있는 초대 교회로서 매우 중요한 성지다.
너비 9.5m, 길이 7m인 그리 크지 않은 동굴에는 나무 벤치 대여섯 개가 놓여 있으며, 앞에는 돌 제단이 있고 정면에는 베드로의 조각이 있다. 초창기 기독교 신자들은 바위에서 떨어지는 물로 세례를 받았고 집회를 진행하다 로마 병정들이 들이닥치면 위로 파인 작은 굴을 통해 바위산으로 피신했다고 한다. 동굴 교회 주변에는 집들과 밭, 목초지가 평화롭게 펼쳐지고 위쪽으로는 험준한 바위산이 하늘 중간까지 치솟아 있다. 베드로는 이 동굴에 와서 신도들을 만났는데 그 당시까지 종교와 모임의 이름이 없던 그들은 여기서 비로소 자신들을 크리스천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 후 7, 8세기에 동굴 앞부분을 신축해서 교회로 사용했다. 지금 이 동굴 교회에서는 매년 성 베드로 축제일인 6월 29일, 안타키아 고고학 박물관에서 주최하는 의식이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