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아 와인의 70%를 생산하는 카헤티 지방과 ‘백만송이 장미’의 시그나기
우리는 와인하면 프랑스나 이탈리아 혹은 칠레를 떠올린다. 그런데 요즘 조지아 와인이 점점 뜨고 있다. 조지아는 와인의 발생지로 8천 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조지아의 코카서스 산맥은 러시아로부터 내려오는 차가운 공기를 막아주고 샌프란시스코와 비슷한 위도로서 와인을 재배하기에 좋은 기후다. 기원전 6천년경에 와인을 만든 흔적이 발견되어 조지아는 와인의 원조 국가로 알려졌다.
“크베브리(Qvevri) 양조 방식으로 만드는 와인”
조지아가 소련 연방에 속해 있을 때는 세계의 그들의 와인이 알려져지 않았고 대부분 국내 소비였다. 그러나 조지아가 독립하고 개방하면서 조지아 와인은 점점 세계적으로 유명해지고 있고 수출하고 있다. 2019년에는 53개국에 9,400만 병을 수출하여 조지아 독립 이래로 가장 많은 양을 기록했다고 한다.
525가지가 넘는 토착 품종이 있다는 데 대표적인 것은 적포도주는 사페라비, 화이트로는 므츠바네, 캇시텔리, 키시 등이다. 조지아에서는 크베브리 양조방식으로 와인을 만드는데 크베브리 와인 양조법은 201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을 정도로 조지아의 고유하고 독특한 양조법이다. 하지만 지금은 10% 정도만 크베브리 방식으로 생산되고 나머지는 유럽 방식으로 생산된다고 한다.
그러나 조지아인들은 크베브리 방식에 대해 자부심이 높다. 크베브리라는 것은 커다란 항아리 도자기로 양조부터 숙성까지 이것 하나로 끝낸다고 한다. 크베브리는 진흙을 한겹씩 덧붙여서 만드느라 한 개 만드는데 한 달이 걸리고, 1000도 이상의 가마에서 굽는다고 한다. 그런 크베브리(qvevri) 즉, 항아리 도자기 안에 포도즙, 껍질과 줄기, 씨를 함께 담아 밀봉한 뒤 땅에 묻어 몇달 간 발효시킨다. 그렇게 하면 호박색을 지닌 향기롭고 풍미 가득한 와인이 생산된다. (이런 것을 보면 마치 김치를 발효시키기 위해 김장 독을 땅에 묻는 것이 연상된다.)
“조지아의 대표 와인들”
현재 조지아는 적극적으로 자국의 와인을 세계에 홍보하고 있다. 한국에도 조지아 와인들이 수입되어서 와인 전문점에 가면 살 수 있다. 그들이 자랑하는 대표적인 와인들을 홍보물에 실린 자료를 통해 소개하면 이렇다. 도수는 대개 10도에서 12도 사이다. 여기 소개한 것 외에도 수많은 조지아 와인이 있으며 한국에서도 마실 수 있지만 조지아에 가면 더 많은 종류의 와인은 값싸게 마실 수 있다.
사페라비(Saperavi)
1886년부터 조지아에서 생산된 와인으로 국제 소믈리에 사이에서 가장 칭송받는 조지아 레드 와인이다. 불투명한 인카르나딘 색조의 드라이 레드 품종으로 만들었다. 청포도로 만들어서 색깔이 진하다. 노화를 방지하는 안토시아닌이 풍부한 레드 와인으로 높은 탄닌감과 함께 블랙베리, 블랙체리, 감초, 초콜릿향이 난다.
르카치텔리(Rkatsiteli)
조지아에서 가장 많이 재배되고 소비되는 이트 와인. 신맛과 적당한 바디감이 특징이다. 향이 조금 부족해서 므츠바네와 15-20% 정도 블렌딩 해서 마신다.
“므츠바네(Mtsvane)”
르카치텔리와 함께 조지아의 화이트 라인을 대표하는 와인이다. 와인 빛깔이 화이트 와인이면서도 호박(앰버)색이다. 복숭아, 살구 향기등 과일 향이 풍부해서 사람들이 많이 좋아하는 와인이다.
킨즈마라울리(Kindzmarauli)
과숙한 체리의 강렬한 색상을 지닌 고품질 레드 세미 스위트 와인. 카헤티(Kakheti)의 가장 유명한 와인 중 하나다.
치난달리 Tsinandali
1886년부터 생산된 와인으로 은은한 꽃향기와 상큼한 청포도 본연의 아로마, 모과가 어우러진다. 부드럽고 섬세한 맛이다.
알라자니 계곡(Alazani Valley)
1977년부터 조지아에서 생산된 세미 스위트 와인. 화이트와 레드 두 종류의 와인이 있다. 특히 화이트 와인은 옥수수 빛깔, 향기로운 부케, 부드러운 과일 풍미가 특징이다.
크반치카라(Kvanchkara)
과거 소련의 지도자 스탈린이 좋아했던 와인. 코카서스 산맥의 남쪽 경사면에서 자란 알렉산드룰리와 주슈레툴리 포도로 만든 세미 스위트 와인이다.
이클립스, 치츠카리 Eclipse, Tsiskari
향긋한 서양배, 톡 쏘는 레몬 껍질과 오렌지 속껍질의 아로마와 함께 달콤한 열대 과일의 풍미를 자랑한다. 치츠카리는 '황혼'이라는 뜻으로, 긴 여운을 지닌 화이트 와인이다. 수확한 르카치텔리 100%를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서 발효한 다음 다른 탱크로 옮겨 6개월 동안 숙성 및 젖산 발효한다. 르카치텔리는 조지아를 대표하는 청포도 품종이다.
마티아쉬빌리 셀라, 마티아쉬빌리 앰버 Matiashvili Cellar, Matiashvili's Amber
청사과, 모과, 붉은 베리 등 복합적인 과일 향이 밀도 높게 드러난다. 카헤티에서 재배한 르카치텔리를 손 수확해 압착한 후 포도껍질, 줄기, 씨 등과 함께 크베브리(qvevri) 조지아의 전통 토기)에서 4개월 동안 발효한다. 이후 1년 6개월간 다른 크베브리로 옮겨 숙성 후 병입한다.
두글라제 와인 컴퍼니, 키시 크베브리 Dugladze Wine Company, Kisi Qvevri
말린 살구, 이국적인 과일향이 물씬 피어오른다. 강한 타닌, 뒤이어 호두같이 구수하고 쩝짤한 맛이 여운을 남긴다. 첨가물 없이 크베블리에서 발효하며, 하루에 3번씩 크베브리를 휘저어 풍미를 끌어올린다. 키시는 카헤티에서 유래했으며 조지아를 대표하는 청포도 품종으로 손꼽힌다.
샤토 부에라, 키시 크베브리 리저브 Chateau Buera, Kisi Qvevri Reserve
노란 꽃향기가 화사하게 피어나며 달콤한 배, 시트러스 풍미에 담뱃잎 힌트와 구수한 견과 뉘앙스가 어우러져 복합적인 인상을 남긴다. 샤토 부에라가 소유한 포도밭에서 수확한 키시를 전통 방식으로 양조해 크베브리에서 6개월 숙성한다. 이후 프렌치 오크 배럴에서 12개월, 병입 후 12개월 추가 숙성해 출시한다;
히흐비(KHIKHIVI) - 오렌지 와인
이 와인은 오랜지 빛깔을 띠어서 오렌지 와인으로 불리기도 한다. 탄닌감이 있고 살구와 복숭아 향기가 난다. 포도즙과 씨앗과 껍질을 함께 크베브리에 넣고 오랫동안 발효시킨 와인이다.
“조지아 사람들의 와인 사랑”
조지아는 우선 포도가 잘 재배되는 곳이었기에 자연스럽게 이것을 발효시킨 와인이 생겨났다. 예전 사람들은 태양을 숭배했고 포도가 그 태양의 에너지를 흡수했기에 와인을 마신다는 것은 태양의 기운을 흡수한다고 믿었다. 그후 초기 시절부터 전파된 기독교의 예배에서도 와인은 성스러운 의미를 갖고 있었다. 그것은 예수님의 피와도 같은 의미며 하나님이 준 생명의 기운을 먹는 의미가 있었다. 그런 종교적 믿음 속에서 와인은 조지아인들의 생활 속에 깊이 파고 들었다. 와인숍도 동네마다 많다.
조지아 여행이 한국인들에게 차차 알려지던 무렵에 여행한 사람들에 의하면 조지아 게스트 하우스 주인들은 늘 술을 마셨다. 여행자들에게도 술을 권했는데 와인도 있지만 ‘차차(Chacha)’라고 하는 조지아식 보드카를 많이 마셨다고 한다. 조지아인들은 그것을 ‘와인 보드카’라고도 불렀는데 와인을 만든 후, 남은 포도 찌꺼기를 증류해서 만든 것으로 다양한 도수가 있지만 남자들은 보드카처럼 독한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보통 40, 50도 정도인데 맛에 대한 한국의 평은 서로 갈린다.
그러나 와인을 좋아하는 여행자들은 조지아에 가면 와인을 많이 마신다. ‘와인’이 값도 싸고 맛있으니까. 그러니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조지아에서 한 시절을 살아볼 만도 하다. 조지아인들이 와인 안주로 주로 먹는 것은 소고기와 야채를 끼운 꼬치구이인 므츠바디(Mtsvadi), 안에 치즈가 많이 든 빵 하차푸리(Khachapuri), 몽골의 영향에 의해 퍼졌다는 다양한 만두 힌칼리(Khinkali) 등이다.
“조지아 와인의 70%를 생산하는 카헤티 지방”
카헤티(Kakheti)는 조지아어의 지방 방언을 쓰는 카헤티인들이 거주하는 곳이다.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에서 북동쪽으로 2시간 차로 달리면 나오는 지역이다. 이곳은 코카서스 산맥의 남쪽, 러시아 연방의 남동쪽, 아제르바이잔의 북동쪽에 있다. 카헤티주는 조지아 와인의 70%를 생산하는 곳으로 카헤티 와인은 조지아 와인을 대표한다. 카헤티 지역의 포도농장들은 '알라자니'라는 강을 끼고 형성되었는데 물이 잘 빠지는 토양과 흑해의 따스한 바람과 따스한 햇빛, 러시아에서 불어오는 극단의 차가운 공기를 막아주는 코카서스 산맥이라는 지형적 특색 때문에 포도가 잘 재배되었다. 또한 코카서스 산맥의 눈녹은 물이 포도밭으로 흘러들면서 포도나무는 풍부한 미네랄을 흡수하게 된다. 낮에는 뜨거운 햇볕, 밤에는 코카서스 산맥에서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으로 인해 포도의 당도가 높아진다. 거기다 전통 양조 방법인 크베브리를 이용해서 발효되는 와인은 텁텁하면서도 풍미가 좋은 독특한 조지아 와인을 만들어냈다.
와인(wine)이라는 단어도 조지아에서 기원했다고 한다. 조지아어로 와인은 그비노(Ghvino)인데, 이것이 이탈리아로 가서 비노(Vino), 프랑스에서 뱅(Vin), 독일어 바인(Wein), 영어 와인(Wine)으로 변화했다는 것이다. 조지아인들은 옛날부터 집집마다 크베브리를 땅에 묻고 와인을 직접 만들어 즐겼다는데 한국인들이 집집마다 김장철에 항아리에 김치를 만들어 발효시켜 먹는 모습이 연상된다. 조지아인들은 손님들을 환대하는 전통적인 의식이 있다. 타마다(건배 제의자)가 나서서 건배를 하면 다 함께 소뿔 모양의 잔에 와인을 따라 마시며 ‘가오말조스(Gaumarjos, 조지아어로 건배)를 외친다고 한다.
“‘백만송이 장미’의 노래 무대인 시그나기”
카헤치 지역에 위치한 마을 벨리치스케(Velistsikhe)는 해발 380m로 인구 5천명도 안되는 작은 마을이지만 와인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방문하는 곳이다. 그곳의 와이너리를 방문하고, 와인을 시음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또 시그나기 마을에 가면 오래된 중세 마을에 온 기분이 든다. 이곳은 해발 800m의 가파른 낭떠러지 위에 세워진 성곽 마을이다. 마을 꼭대기 전망대에 서면 오렌지색 지붕의 집들 너머로 알라자니(Alazani) 평야가 내려다보인다. 오래전 실크로드를 오가던 대상들이 이곳에서 쉬었다고 한다.
수도 트빌리시에서 100km 떨어진 시그나기 마을은 차로 약 1시간 40분 걸리는데 ’조지아의 보석‘이라고도 불린다. 산악 마을로 한적하게 거닐기 좋은 곳이다. 주변에는 보드베 수도원이 있고 시에는 국립박물관도 있다. 그곳에는 조지아의 역사적인 유물이 전시되어 있고 조지아의 화가 ’니코 피로스마나쉬빌리‘ 상설 전시관도 있다 이 마을은 우리에게도 유명한 러시아 노래이며 한국인 가수 심수봉이 불러 유명해진 ’백만송이 장미‘가 탄생한 마을이라고 전해진다. 세계적인 화가 조지아 출신 니코 피로스마니는 시그나기에서 자랐고 재능은 있으나 가난했다고 한다. 그러다 47살에 마을에 공연을 하러 온 프랑스 여배우 마르가리타에게 반했다. 그는 그녀의 숙소를 찾아가 장미를 계속 주고 근처를 장미로 채웠다. 그는 전 재산을 다 팔아 장미꽃을 샀다는데 프랑스 여배우가 가난뱅이 화가에게 눈길을 줄리 없었다. 그 이야기를 러시아 시인이 시로 썼고 그것을 ’라트비아 원곡‘에 맞춰 알라 푸가초바가 불렀으며, 심수봉의 번안곡, ’백만송이 장미‘를 통해 우리에게까지 알려졌다.
그 노래의 가사는 이렇게 시작된다.
“한 화가가 살았네. 홀로 살고 있었지. 작은 집과 캔버스를 갖고 있었네. 그러나 그는 꽃을 사랑하는 여배우를 사랑했다네. 자신의 집을 팔고 그림도 팔아, 그돈으로 장미의 바다를 샀다네. 백만송이, 백만송이, 백만송이 붉은 장미...”
그런데 원래 이 노래는 라트비아 노래라고 한다. 원 가사는 라트비아가 처한 조국의 운명과 비극적인 역사를 모녀 관계로 상징적으로 노래한 것인데 이것을 러시아에서 완전히 다른 내용의 가사로 바꾸어 부른 후, 크게 히트했다. 실제로 조지아 출신 화가, 니코 피로스마니가 프랑스 여배우를 사랑한 것은 사실이지만 장미를 그렇게나 많이 선물했다는 일화는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노래나 그림이나 문화에 얽힌 이야기들은 깊이 파고들면 진실이 모호해진다. 그러나 예술이 우리에게 주는 감동은 팩트 때문이 아니라, 그 노래와 그림이 우리에게 주는 상징과 은유를 통해서 보편적인 감정을 건드려주기 때문이다. 백만송이 장미는 곡과 함께 그 의미가 우리의 심금을 울린다.
백만송이 장미는 다국적이다. 원래 곡은 라트비아 것이고(원래 이란에서 불렸다는 노래고, 그 가수는 아제르바이잔 출신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러시아(그 시절은 소련시절)에서 번안을 했는데 그 내용의 무대는 조지아의 시그나기이며 크게 유행시킨 것은 러시아의 가수 알라 푸가초바다. 라트비아에서는 화가 날 만도 하고, 이란 가수가 먼저 불렀다면 이란에서도 자신이 원조라 이야기할 만하고, 아제르바이잔 사람들은 자기들이 먼저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조지아의 시그나기에 오면 알라푸가 초바의 노래가 더 와닿는다. 그 내용이 여기에 맞기 때문이다.
“한 화가가 살았네. 홀로 살고 있었지. 작은 집과 캔버스를 갖고 있었네. 그러나 그는 꽃을 사랑하는 여배우를 사랑했다네. 자신의 집을 팔고 그림도 팔아, 그 돈으로 장미의 바다를 샀다네. 백만송이, 백만송이, 백만송이 붉은 장미...”
시그나기에 가면 알라 푸가초바의 백만송이 노래를 들으며 이 도시의 골목길들을 거닐어 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