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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비안 나이트의 세계가 펼쳐지는 페스의 메디나

c.unsplash.com/Selina Bubendorfer

페스는 모로코에서 가장 매력적인 지역 중 하나다. 12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곳에 오면 자연과 역사, 문화, 예술, 수공예와 쇼핑을 동시에 즐길 수 있다. 메디나(구시가지) 골목길을 거닐며 길을 잃는 가운데 낯선 세계, 다른 세계를 탐험하는 시간을 갖는다. 어린 시절 우리가 갖고 있었으나 잃어버린 그 모험과 탐험과 상상의 세계가 펼쳐지는 도시다.

“어느 이름이 옳을까요?”

이름이 많이 혼용되어 쓰인다. 페즈(Fez, 미국식 영어), 페스(Fes. 영국식 영어), 페스(Fès, 프랑스어) 또는 Fas(더 직접적인 음) 등이라 하는데 여기서는 ‘페스’로 표기한다.

c.unsplash.com/Christopher Eden

“천년의 고도 페스”

페스(Fes)의 인구는 112만명(2014년 기준)으로 마라케시와 함께 모로코의 고도다. 모로코 최초의 왕조를 세운 이드리스 1세는 서기 789년 웅장한 규모의 수도를 설립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그는 계획이 실행에 옮겨지기 전에 세상을 떴지만, 그의 아들 이드리스 2세가 그 뒤를 이어 마침내 809년 페스가 건설되었으니 마라케시보다 약 250년 앞선 도시다.

이 도시는 베르베르족의 작은 마을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알 안달루스(이베리아 반도의 무슬림 통치 지역)에서 피난 온 8,000 가정이 정착하였고 현재의 튀니지 왕조인 카이루안 Kairouan 왕조의 아랍인들이 서쪽 비탈에 정착하여 카이루안 구역을 형성하였다. ​페스의 메디나에는 이런 문화유산들이 혼재하고 있다.

11세기에는 마라케시에서 일어난 알 모라비드에 의해서 통치되다가 그후 마리니드 시대(13-15세기)에 정치적 수도의 지위를 되찾고 많은 모스크가 건설되며 발전한다. 이 기간에 유대인들이 이곳으로 많이 유입되면서 멜라(유대인 지구)기 남쪽에 형성된다. 마리니드 왕조가 망한 후 페스는 쇠퇴하면서 정치적, 문화적으로 마라케쉬와 경쟁하는 관계가 되다가 1912년까지 알라위 왕조 치하에서 다시 수도가 되었지만 유럽 열강이 밀고 들어오자 마라케시와 함께 페스는 중요성이 감소하였다. 다만 현재는 천년 고도의 위상을 간직한 채 관광객을 부르고 있다.

“1400개의 골목길 길이 거미줄처럼 뻗친 메디나(구시가지)”

여행자들이 마라케시의 메디나(구시가지)에서 입을 벌리며 놀랐다면, 페스의 메디나에서는 혼이 빠져 버릴 정도다. ‘블루 게이트’를 통해 메디나로 들어가는 순간 다른 세계로 들어온 것을 실감한다. 모든 골목길이 거의 다 시장으로 변했다. 모로코의 각도시마다 메디나가 있지만,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페스의 메디나다. 1,400개의 골목길이 거미줄처럼 뻗어 있고 골목길에는 수천 가지의 상점들이 즐비해서 아라비안 나이트의 풍경이 펼쳐진다.
차가 진입할 수 없을 정도로 좁은 길에는 당나귀가 짐을 나른다. 당나귀와 인파와 상점들이 함께 하는 이 풍경 속에서 페스의 천년 역사를 볼 수 있다. 외세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이런 수많은 골목길을 만들었고 이민족 병사들은 미로에 들어왔다가 모로코 병사들에게 공격을 당했다고 한다.

들어서면 우선 노란색, 분홍색 담벼락에 가슴이 설렌다. 그러나 길을 잃을 것 같다는 두려움이 몰려온다. 혼자라면 차라리 길을 잃은 각오를 하고 돌아다니다 찾아 나오겠지만 가이드를 따라다니는 여행자라면 늘 그를 놓지지 않기 위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골목길에는 식당, 카페들도 있고 히잡을 쓴 여인들과 전통 복장을 한 사내들이 어우러져 영화 속의 한 장면을 걷는 기분이 든다. 이곳은 옷, 장신구, 접시, 도기, 가죽 제품, 공예품, 보석, 기념품, 신발가게 등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만물 시장이다. 그 골목길에는 관광객만이 아니라 현지인들을 위한 생필품 가게, 세탁소, 서점 등도 있으니 그야말로 페스 시민들 천년의 역사가 다 고여있다. 1997년 유네스코에서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메디나 안에는 시장만 있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관광 명소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은 카라위안 대학이다. 이 대학은 859년에 창설되어 이슬람 문화의 중심지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카라위안 모스크 (Mosquee Karaouiyne)로 되어 있다. 이곳은 10세기 경에는 2만 명 이상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을 만큼 웅장한 규모를 자랑했지만 수세기에 걸쳐 집과 길이 빽빽하게 들어서면서 모스크의 웅장한 원래 모습을 알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래도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해서 이슬람 건축 양식을 감상한다.
아따린 코란학교 (Medersa el Attarine)는 규모는 작지만 아름답다. 14세기 초반, 메리니드 왕조의 아부 사이드 Abou Said 왕에 의해 건설되었으며, 특히 기둥마다 손으로 새긴 아랍어 서예체는 매우 아름답다.
물라이 이드리스 자우이아 (Moulay Idriss Zaouia)는 이 도시를 수도로 정한 이드리스 I세의 시신이 모셔진 곳으로 이곳을 방문하면 복을 받는다고 해서 페스 주민들이 종종 찾는다.그외에도 라바트 왕궁, 다르 엘 마크젠 왕궁들 천년의 고도답게 페스에는 많은 유적지들이 남아 있다.

페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관을 감상하려면 보르주 (Borj)로 가야 한다. ​16세기 말, 사아디안 왕조의 아흐메드 알 만수르(Ahmed al-Mansour)가 페스 내 반란을 꾀하는 세력을 감시하기 위해 건설한 요새였는데 이제는 박물관으로 개조되어 있다. 내부에는 전통적인 모로코 예술 작품들과 함께 역사적인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또한 페스의 멋진 경관을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도 운영하고 있다.
특이한 것은 이곳에 멜라 (Mellah)라고 하는 유태인 구역이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14세기에 유태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이곳으로 이주가 장려되었었는데 유태인들은 술탄에게 충성을 바쳤고 그들의 가옥은 대로를 향해 안달루시아 양식의 발코니가 나 있어서 무슬림 양식과 대조를 이룬다. 현재 이곳에 남아있는 유태인은 소수지만 그들의 흔적은 음식과 옷차림을 통해 유지되고 있다. 이곳은 유대인 관광객들에게 인기 있는 곳이며 멜라에서는 유대인 축제와 행사가 매년 열리고 있다.

“세계적인 가죽 염색 공장, 태너리”

페스에서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곳은 가죽 염색 공장, 태너리다. 방송에서도 소개되어서 그것을 보고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온다. 페스의 가장 큰 산업은 가죽 무두질과 염색이다. 가죽을 부드럽게 만들고 염색을 해서 가죽 제품을 만들어낸다. 재래식 공장 옆에는 거기서 나온 가죽 제품을 파는 상점들이 즐비하다. 전 세계적으로도 이렇게 대규모로 수작업으로 가죽 염색하는 곳은 거의 없기 때문에 그 과정을 보는 것 자체가 흥미롭다.
1400개나 되는 골목길에서 그곳을 어떻게 찾아갈 수 있을까? 냄새를 따라가면 된다. 태너리에서는 염색을 위해 비둘기를 비롯한 동물 배설물을 이용해서 고약한 냄새가 난다. 헤매고 있으면 가죽 제품 상점의 점원들이 안내해주겠다고도 한다. 그의 도움을 받든, 냄새를 따라가든, 지도를 보고 가든 찾아가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 공장 안에 직접 들어갈 수는 없고 공장을 둘러싼 가죽 제품 상점의 2층 테라스에서 그 광경을 내려다볼 수 있다.
가죽을 부드럽게 만드는 인부들은 형형색색의 동그란 염색통에 들어가 발로 가죽을 밟는다. 특수한 옷을 입기는 했지만 그 독한 냄새를 맡아가면서 묵묵히, 성실하게 작업하는 모습은 감동적이다.

페스의 제품이 세계 최고인 것은 모든 공정이 전통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양과 소를 잡아 가죽을 벗긴 다음 비둘기의 배설물로 털을 제거하고 독특한 색깔의 염색용 수조에서 염색하고 그늘과 햇볕에서 건조하는 전통적인 방식을 수백 년간 이어왔다. 테너리 주변에 가죽 상품들을 많이 판다. 지갑, 재킷, 가방, 혁대, 방석 등 다양한 품질은 믿을 만하다. 그러나 사려면 흥정을 해야 한다 처음부터 반을 후려치면서 시작하라는 말이 많이 떠돈다.

페스는 천년 고도의 자부심과 함께 모로코의 엘리트층 및 부유층이 집중적으로 몰려 살고 있다 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관심을 끄는 것은 서민들이 모이는 메디나(구시가지)의 시장과 인부들이 묵묵히 땀 흘리는 무두질 작업 현장인 태너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