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누보 건물들을 감상할 수 있는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
리가(Riga)는 라트비아의 수도로 발트해 접해 있는 도시로, 발트 3국 즉,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 3국 가운데서 리가가 가장 큰 도시다. 그러나 면적은 307.17km2이고 인구는 2020년 기준 약 63만 명이니 우리 기준으로 보면 중소 도시다. 서울 반 정도 되는 면적에 이 정도 살고 있으니 한적하고 여유로운 도시다. 리가의 구시가지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알베르트(Albert) 거리의 아르누보 건축물”
라트비아의 수도인 리가에는 아르누보 양식의 건축물들이 많다. 아르누보 양식은 19세기말과 20세기에 유행했던 전통을 벗어난 새로운 기법이다. 아르누보 양식의 건축물들은 다른 유럽 국가의 고풍스러운 모습보다는 젊고 신선한 느낌이 들게 한다. 리가 시내의 모든 건물 중 1/3 정도가 이 건축 양식으로 지어져 있다. 이런 건축 양식이 유행할 때인 19세기말과 20세기 초에 리가는 경제적으로 형편이 좋아서 이런 건물들을 많이 건설했다. 그 중에서 아르누보 건물들의 아름다움을 가장 많이 간직한 거리는 알베르트 거리다. 이 거리의 많은 주택들이 아르누보 건축 양식의 건물들이다. 그 외에도 현대적인 바와 레스토랑들이 있어서 흥겹고 해변도 멀지 않은 곳에 있어서 바람 쐬기가 좋다.
“검은 머리 전당(House of the BLack Head)”
‘하우스 오브 더 블랙헤드’는 리가의 랜드마크라고 할 수 있다. 1300년대 초 ‘검은 머리’라는 이름을 가진 상인 조합(길드)에서 만든 것으로 당시에는 상인들의 연회 장소, 숙소로 사용된 이 건물은 ‘검은 머리 전당’이라 불리었다. 초창기 양식은 고딕 양식이었지만 독일군에 의해 파괴된 후 재건하는 과정에서 고딕 양식에 네덜란드 양식을 결합해서 2001년 현재의 모습으로 재탄생했다. 지하 전시실에는 과거의 모습을 전시해 놓았고 지상의 2개층에는 현대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새롭게 탄생한 2001년부터 한동안 대통령 집무실로 사용되던 곳이다. 많은 여행자들이 낮에 와서 안을 구경하고 밤에는 멋진 야경을 감상하고 있다.
“리가 중앙 시장”
리가 중앙 시장은 멋진 건물 안에 있고 안에는 다양한 농산물과 음식을 팔고 있다. 이곳은 유럽에서 가장 큰 시장 중 하나다. 100년이란 세월 동안 유지된 이 시장은 현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유르말라 해변”
시내 중심가에서 기차를 타고 30분 정도 가면 멋진 해변 유르말라가 나온다. 30km 넘게 펼쳐진 길고 넓은 모래사장, 맑은 바닷물을 보고 소나무로 뒤덮인 해변을 걷는 시간은 행복하다. 해변 산책을 즐기고자 한다면 유르말라는 계절과 상관없이 방문해도 좋은 곳이다.
“구시가지 베츠리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구시가지 베츠리가는 자갈이 깔린 길이다. 이곳에는 옛날 건축물들이 있지만 또한 새로운 레스토랑들도 많다. 이곳을 거닐며 다양한 음식과 분위기를 즐기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라트비아(Latvia)와 리가의 역사”
리가(Riga)는 독일 브레멘의 주교였던 알베르트(Albert)가 이 도시를 건설하였다. 리가는 1282년에는 한자(Hansa) 동맹 가맹 도시가 되어 발트해 연안의 주요 상업도시로 번영을 누렸다.
한자(Hansa)는 13세기 초에서 17세기까지 독일 북부 도시들과 발트해 연안의 도시들이 뤼베크를 중심으로 모인 무역 공동체다. 이것은 상인 조합이 발전한 형태로 이들 간에는 국경도, 관세도, 경제에 대한 정치의 부당한 개입도 없었다. 이들은 서쪽으로는 영국, 동쪽으로는 발트해까지 영향력을 넓히고, 자체적인 해군을 보유하여 교역로를 독점하면서 대항해 시대 이전 중세 유럽에서 힘을 발휘했다.
이들은 1370년대 전성기를 맞았고 17세기에는 쇠락했는데 30년 전쟁이 계기가 되었다. 1517년 마르틴 루터에 의해서 종교 개혁이 시작되었고 신성 로마 제국이 구교(카톨릭)를 신교(개신교)를 믿는 국가에 강요하자 신교 국가들이 저항한 전쟁이 30년 전쟁(1618년-1648년)이다. 이 전쟁은 네덜란드 독립 전쟁(1572-1609), 프랑스 위그노 전쟁(1562-1598)과 함께 종교 전쟁의 일부였는데 16세기와 17세기의 벌어진 이 종교 전쟁은 유럽의 정치적, 종교적 지형도를 완전히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30년 전쟁에서 신교 국가들이 승리하고 베스트 팔렌 조약(1648)이 맺어지자 유럽의 구질서는 무너지고 새로운 질서가 탄생한다. 독일과 스페인은 기울고 네덜란드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했으며 새로운 강자로 스웨덴이 부상한다.
리가는 독립도시로서 13세기에서 15세기까지 번영을 누렸지만 종교 전쟁의 파도가 이곳에도 몰아친다. 리가는 마르틴 루터의 교리를 받아들여 루터 교회로 개종했다.(1530~40년) 즉 신교를 택한 것이다. 이로 인해서 1559년, 러시아의 이반 4세가 보낸 군대에 의해 점령당하고 많은 인구가 러시아군에게 학살당한다. 이에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군이 러시아군을 몰아내고 1581년에 리가를 점령한다. 그 후 1621년, 스웨덴이 이곳을 점령하면서 스웨덴의 일부가 되었다.
다른 나라들은 베스트 팔렌 조약(1648)에 의해서 새로운 질서가 정착되었지만 리가는 여전히 혼란 속에 있게 된다. 동쪽의 러시아는 스웨덴을 공격한다. 1709년에 폴타바 전투에서 스웨덴 군은 러시아군에게 패배당하고 러시아군은 1710년에 에스토니아 공국, 리가를 공격하면서 리가는 9개월 동안 포위당한 끝에 러시아군에게 함락당했으며 러시아 영토에 속하게 된다.
그후 리가는 제1차 세계대전까지 러시아 제국의 중요한 항구 도시로 발전하게 되고 인구도 증가한다. 리가는 그 시절 러시아 제국에서 다섯 번째(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 키예프, 바르샤바 다음으로) 큰 도시이자 가장 큰 항구였고 새로운 건물들이 들어서면서 중세의 도시를 벗어나 현대화된 도시로 변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1917년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에 따라 독일 제국군이 진주했고 제1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이 패하자 라트비아는 독립한다. 1918년에 리가는 라트비아의 수도가 된다. 그러나 1940년 6월 소련이 점령하면서 라트비아는 소비에트 연방에 속하게 되지만 1941년 독일이 소련을 공격하는 가운데 나치 독일에 점령되었고, 리가에 살던 2만 명이 넘던 유대인들은 거의 모두 학살되었다. 1944년 10월, 소련이 이곳을 탈환한 후, 라트비아 사회주의 공화국은 다시 소련 연방에 속하게 된다. 그후 라트비아와 리가는 러시아화가 되었고 중세 건축물들도 복원이 되었으며 근처의 해수욕장은 소련에서 손꼽히는 관광지가 되었다. 그리고 소련이 해체되면서 1991년 9월 라트비아는 소련으로부터 벗어나 독립한다.
리가를 중심으로 한 라트비아 지역은 중세 시절 번영했지만 근대에 들어서면서 민족국가가 출현하는 가운데 스웨덴, 독일, 러시아라는 강대국 사이에 끼어서 힘든 시기를 보냈다. 이런 역사를 갖다 보니 라트비아인은 스웨덴처럼 대부분이 개신교를 믿고 일부는 러시아 정교회를 믿는다. 또 인구 구성은 계속 바뀌어 왔다. 독일인, 라트비아인, 러시아인들이 모두 함께 살아왔는데 19세기 중반에는 독일어 사용자가 다수를 차지했다. 1867년 기준으로 독일어 사용자 42%, 러시아어 사용자 25%, 라트비아어 사용자 23%였다. 그러나 1891년 러시아 제국에 의한 러시아화가 시행되면서 공용어가 러시아어가 된다.
리가 역시 인구 구성이 계속 변해왔다. 시골의 라트비아인이 수도인 리가로 이주하면서 19세기 후반에는 리가에서 라트비아어 사용자가 증가한다. 1897년 리가는 인구 28만이고, 1913년에는 47만 명에 달했으나 제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면서 1920년에 19만까지 감소한다. 이후 리가에서 라트비아인이 인구의 60%를 넘는 다수가 되었으나 제2차 세계 대전 후 라트비아가 소련에 합병되면서 러시아인의 비중이 높아졌다. 그러나 소련이 해체되자 리가에서 러시아인이 빠져나가면서 러시아 인구가 감소했고 2014년에는 라트비아인 42.8%, 러시아인 39.5%의 인구 구성을 보이고 있다. 그 외에 벨라루스인, 우크라이나인, 폴란드인, 리투아니아인이 각각 몇 퍼센트의 소수로 존재하고 있다.
이렇게 리가, 라트비아의 역사가 험난해서 리가에는 여러 문화와 민족이 혼재한다. 리가, 라트비아 여행을 하다가 만난 사람들이 다 ‘라트비아인’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이유다. 이런 상황 속에서 그들의 정체성을 관찰하는 것도 여행의 재미고 동시에 조심해야 할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