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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시아의 스위스라는 키르키스스탄의 수도 비슈케크

비슈케크(Bishkek)는 키르키스스탄의 수도이자 최대 도시로 2021년 기준 인구는 약 100만 명 정도다. 이곳은 주변을 둘러싼 천산산맥의 눈덮인 산봉우리들이 가장 인상적인 곳이다. 비슈케크라는 이름은 고귀한 인물의 이름에서 유래가 되었다. 어떤 여인이 임신을 했는데 쿠미스(마유주)를 휘젓는 데 사용되는 주걱, 즉 비슈케크를 찾다가 갑자기 아이를 낳았다. 그래서 소년의 이름이 비슈케크가 되었으며, 훗날 소년은 자라서 고귀한 인물이 되었고, 그의 이름을 따서 비슈케크라는 이름이 나왔다고 한다.

“비슈케크까지 직항 노선이 생겼다”
2023년 6월 11일, 티웨이 항공이 키르키스스탄의 수도 비슈케크(Bishkek)까지 정기 노선으로 신규 취항했다. 국내 항공사 중에서는 처음으로 취항하는 것으로, 이제 인천에서 키르기스스탄까지 곧바로 가게 되어 키르기스탄의 천산산맥 트레킹 하는 사람들에게 매우 편리하게 되었다. 주 1회로 운항하는 인천-비슈케크 노선은 매주 일요일 오후 4시경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비슈케크공항에 현지 시각으로 오후 8시 30분경 도착하게 된다. 비행시간은 약 7시간 정도 소요된다.

“현대에 와서 비슈케크라는 이름을 갖게 된 계기”
이곳은 1825년 코칸드 칸국 때 피쉬펙 요새가 있었는데 거기서 유래되어 도시 이름이 피쉬펙(Pishpek)이 되었다. 1925년 러시아 내에 카라 키르기스 자치주가 설립되어 피쉬펙을 수도로 승격시켰다. 소련 공산당은 1926년 이곳에서 태어난 볼셰비키 군사 지도자 미하일 프룬체(1885~1925)의 이름을 따서 도시 이름을 프룬체로 바꾸었고 1936년, 프룬체는 키르기즈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수도가 되었다. 그후 1991년 소련 연방이 해체되고 키르기스 공화국이 출범하면서 키르기스 의회는 수도의 이름을 17세기의 이름인 비슈케크로 바꾸었다.
비슈케크는 천산산맥의 연장인 키르키즈 알라투 산맥의 북쪽 변두리 바로 옆, 고도 약 800m에 위치해 있다. 주변의 산들은 높이가 4,895m에 달하는데 도시 북쪽에는 비옥하고 완만한 기복이 있는 대초원이 펼쳐지고 북쪽으로 이웃한 카자흐스탄까지 뻗어 있다. 비슈케크의 대로는 매우 넓고 수많은 소련스타일의 아파트들이 보이며 도심 외곽에는 소규모 주택 수천 채가 있다. 대부분의 거리에는 가로수가 있는데 가로수에 물을 제공하는 좁은 관개 수로의 양쪽 측면에 도로가 있는 구조다.

“키르기스스탄은 중앙아시아의 스위스”
1991년까지 소련의 일부였던 키르기스스탄은 천산산맥의 장엄한 풍경, 깨끗한 호수 등을 가져서 ‘중앙아시아의 스위스’라는 소리를 듣고 있다. 키르기스스탄은 산악국가로 전 국토의 80%가 천산산맥에 속한다. 전국에 85개의 높은 산이 있다. 가장 높은 산은 산은 ’젱기쉬 초쿠수(Jengish Chokusu)‘로 해발 7,439m다. 또한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고산 지대에 호수가 있다. 이곳은 등산할 곳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관광 기반 시설이 많지 않다. 국가 전체 GDP의 1.25%만이 관광에서 나올 뿐이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고산지대 호수, 이식쿨 호수가 있다. 해발 1,600m에 있으며 호수 바닥에서 온천이 솟구쳐서 추운 겨울에도 얼지 않는다. 이식쿨(Issyk-Kul)은 키르기스어로 '뜨거운 호수'를 의미한다. 이식쿨 호수는 소련 정권 하에서 인기 있는 휴가지였다. 키르키스스탄은 과거에 실크로드의 천산북로, 즉 초원의 길에서 중요한 곳이었다. 그러다 보니 여러 나라들의 세력들이 몰려와서 중국, 이란, 중동의 영향을 받았다. 소련에 속했다가 현재는 다시 중국과 이슬람권의 영향을 더 많이 받고 있다.
키르키스스탄은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적은 국가 중 하나다. 약 20만 제곱킬로미터 규모의 국토에 550만 명이 조금 넘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남한이 약 10만 제곱킬로미터에 인구가 약 5천만 명이라고 보면 키르키스탄은 남한보다 두배 넓이의 땅에서 10분의 1정도의 인구가 사는 것이니 국토가 텅 빈 느낌으로 다가온다. 키르기스스탄의 1제곱킬로미터당 주민 수는 29.5명에 불과하며 키르기스스탄 인구의 36%만이 도시에 살고 있고 전 국토에 흩어져 있으니 도시와 전 국토가 한산한 편이다.
키르기스스탄 사람들은 긴 시를 좋아한다. ’마나스의 시‘(Epic of Manas)는 무려 500,000줄로 구성되어서 그리스의 오딧세이(The Odyssey)보다 20배나 더 길다. 전사 마나스(Manas)의 삶에 대한 구전 설화에서 왔는데 18세기에 글로 기록되었고 최초의 완전한 버전이 1920년에 출판되었다. 이 영웅은 동상, 도로, 대학, 공항 및 그의 이름을 딴 오페라 등 다양한 방식으로 기념되고 있다.
오쉬(Osh)는 이 나라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고 가장 오래된 도시다. 이곳의 오쉬 바자르(Osh Bazaar)는 3,000년 전에 만들어진 시장으로 한때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유명한 육로인 실크로드의 주요 무역 지점이었다. 나라에는 세 개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있는데 천산산맥, 역사적인 실크로드를 구성하는 도로 및 술레이만산이 모두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키르키스스탄은 아직 발달이 덜 된 나라로서 세계에서 가장 짧은 철도망을 갖고 있다. 전 국토의 철도 길이가 417km에 불과하다.

“키르기스스탄의 약탈혼”
키르기스스탄은 약탈혼 혹은 납치혼 등의 전통이 있었고 현대에도 종종 발생해서 문제가 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보쌈‘이라는 행위가 있었다. 밤중에 남의 집에 몰래 숨어들어가 여자를 보자기로 싸서 납치하는 행위다. 이것은 과부의 재혼을 위해 서로 약속을 한 뒤 하는 경우가 많아서 눈감아 주던 행위였지만 조선 초부터 법으로 금지했다.
그런데 키르기스스탄은 그런 전통이 그대로 남아 있다. 키르기스스탄의 약탈혼은 ‘알라가추’라는 이름의 납치 결혼인데 2014년 통계에 의하면, 키르기스스탄 정부도 1년에 약 54,000쌍이 결혼 중에 50%가 알라카추에 의한 것이라고 인정했다. 또한 유엔 여성 기구에서는 키르기스스탄에서 매년 12,000여명의 여성들이 납치 결혼을 당한다고 밝혔다. 2018년, 2021년에도 여성을 납치하는 과정에서 여성이 반항하자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특히 이미 남자 친구가 있는 여성은 당연히 반항하는데 그 과정에서, 혹은 납치된 후 죽음까지 이르는 사건이 발생하는 것이다.
키르기스스탄 정부는 2013년 알라카추를 불법화 했지만 형량이 미미하다. 17세 이하의 여성을 납치하면 최고 10년, 18세 이상의 여성을 납치하면 최고 5년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했는데 최고 11년 형의 가축 절도보다 여성 납치행위에 대한 형량이 낮다는 비판도 있다. 그런데 신고해도 재판을 받는 것은 극히 부분적이며 재판이 되어도 대부분 벌금이나 집행유예가 된다고 한다. 오히려 신랑 측의 가족들 중의 여성들이 나서서 납치된 여성들을 달랜다. ‘나도 그렇게 해서 결혼했지만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설득한다. 과거 한국인 여성도 알라카추를 당했지만 교민들이 납치범 가족을 설득해 구해준 사건도 있다 한다. 키르기스스탄에 키르기스인에 이어 우즈베크인, 러시아인, 중국계 무슬림등 다양한 민족이 살고 있고 이곳의 전체 인구의 80%가 이슬람교도인데 이런 납치 결혼은 이슬람 전통이 아니라 키르기스스탄 유목민들의 전통이다.

“키르기스스탄 여행의 안전”
키르기스스탄이 특별하게 위험한 나라라고 할 수는 없지만 어디서나 범죄는 발생하고 잠재적인 폭동, 테러의 위험은 있는 곳으로 파악되고 있다. 개인 여성들의 여행은 대체적으로 위험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약탈혼이 현대에도 발생하는 곳이며 그 처벌도 약하기에 위험성이 없다고 볼 수 없다. 그것이 전통, 관행이었기에 남자들의 의식이 쉽게 변하고 있지 않다. 여성은 혼자 밤에 걸어 다니지 말고 복장을 보수적으로 하고 다니라는 경고들이 있다. 여성의 경우 가급적이면 키르기스스탄 여행은 단체로 하는 것이 안전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