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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산산맥이 내려다보고 있는 카자흐스탄의 알마티

c.unsplash.com/Alexander Serzhantov

현재 카자흐스탄의 수도는 알마티가 아니라 아스타나다. 알마티는 1929년부터 1997년까지 수도였는데 소련으로부터 독립하면서 아스타나로 옮겼다. 하지만 지금도 알마티는 카자흐스탄의 최대 도시다. 인천에서 직항이 있어서 6, 7시간 정도 후면 알마티에 도착할 수가 있다. 한때 이곳은 ‘알마타’로 불렸다. 카자흐스탄어로 알마(Alma)는 ’사과‘를 의미하고 아타(Ata)는 ’아버지’를 의미하니 ‘알마타’는 ‘사과의 아버지’라는 뜻을 갖고 있다. 소련 시절에 ‘알마타’로 불렸는데 요즘의 공식명칭은 ‘알마티(Almaty)다. 예전에는 사과나무가 많아서 개울에 사과가 둥둥 떠다닐 정도였다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울창한 나무들이 도시에 많이 보인다.

“천산산맥이 내려다보는 알마티(Almaty)”
예전처럼 사과나무가 무성하고 개울에 사과가 둥둥 떠다니는 것을 상상하면 이 도시가 꽤나 낭만적일 것 같다. 지금 그런 풍경은 아니지만 그래도 낭만적인 도시다. 어딜 가나 도시를 내려다보는 하늘 중간에 걸친 눈 덮인 천산산맥을 볼 수 있고 그 청정한 기운을 느낄 수 있다. 울창하고 푸른 나무들이 곳곳에 무성해서 상쾌한 느낌이 든다. 알마티는 해발 850미터에 위치해 있는, 인구 140만의 도시로 더이상 카자흐스탄의 수도는 아니지만 현재 이 나라의 상업적, 사회적, 문화적 중심지다. 그러나 한국인들이 가면 한적하면서도 깨끗한 느낌이 들어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러나 도로에서는 자동차들이 내뿜는 매연이 심한 편이다.


“알마티 근교의 심블라크 리조트”
대표적 관광지로서 심블라크(Шымбұлақ), 혹은 침불라크 Чимбулак)라는 곳이 있다. 이곳은 리조트고 스키장이 유명하다. 2011년 아스타나·알마티 동계 아시안 게임을 개최하면서 대대적으로 정비된 스키장은 시설이 매우 훌륭하다. 천산산맥의 자연설 스키장이라 질도 좋고 선진국 못지않은 시설을 갖춰 놓았다. 이곳에 가려면 일단 알라타우 국립공원(Ile-Alatau National Park)으로 가야 한다. 알마티에서 남쪽으로 약 25km 정도 떨어진 메데우(Medeu)까지 우선 간다. 도시를 빠져나와 해발 약 1500m에 위치한 메데우에 가면 공기가 매우 상쾌하고 부자들이 사는 전원주택 단지가 나온다. 푸른 삼림이 가득하고 멀리 만년설로 꼭대기가 덮인 봉우리들이 보인다. ‘카자흐스탄의 알프스’라 불리는 천산산맥의 봉우리들이다. 메데우에서 곤돌라를 타고 해발 3200m의 심볼락 리조트까지 올라가는 동안 만년설로 덮인 장엄한 천산산맥의 풍경을 볼 수 있다. 발아래로 세계 최고 높이에 있는 빙상 경기장도 볼 수 있다. 2011년 동계아시안게임, 2012년 반디 세계 챔피언십, 2017년 동계 유니버시아드가 개최된 곳이다.

“알마티의 고려인”
알마티와 근처에는 옛날 고려인들이라 불리는 한국인들의 아픈 상처가 배어 있다. 1937년 8월, 소련 인민위원회 및 공산당 중앙위원회 결정 No. 1428-326cc (1937년 8월 21일)에 따라서 극동 지역에 거주하고 있던 모든 고려인들이 카자흐 공화국 및 우즈베크 공화국 등지로 강제 이주 되었다 스탈린 시절, 연해주에 살던 조선인들 중에 일본 간첩이 많다고 여긴 스탈린의 결정에 의한 것이었다. 소련 내무인민부 의장인 예조프의 1937년 12월 5일 문서자료에 의하면, 카자흐 공화국에 20,141가구 95,427명, 우즈베크 공화국에 16,079가구 73,990명, 타지크 공화국에 13가구 89명, 키르기즈 공화국에 215가구 421명 등 총 36,448가구 169,927명의 고려인들 배치가 완료되었다. 카자흐 공화국에 배치된 고려인들 중 500여 가구는 이듬해 초에 러시아 공화국의 아스트라한 지역으로 재이주되었다.
카자흐스탄으로 온 고려인들은 알마티에서 북동쪽으로 300km 떨어진 우슈토베의 황무지에 내동댕이쳐졌다. 죽으라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짐승처럼 화물 객차에 실려온 조선인들의 생명력은 억셌다. 그들은 토굴, 움막에서 살며 갖고 온 곡식 종자를 뿌려 황무지를 옥토로 바꾸어 놓았다. 특히 논을 많이 만들어 벼농사를 지어 중앙아시아의 농업기반을 다지는데 큰 역할을 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금 그곳은 우슈토베 역에서 자동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바스토베산 부근이다. 원동(연해주)으로부터 강제 이주된 고려인들이 1937년 10월 9일부터 1938년 4월10일까지 토굴을 짓고 살았던 초기 정착지다. 그곳은 현재 고려인들을 묻은 공동묘지가 되어 있다. 초기에 배고픔에 시달리던 그들을 보고 선량한 카자흐인들이 불쌍히 여겨 가끔 고기덩어리를 가져 주었다고 한다. 지금도 극소수만 생존하는 고려인 1세대는 카자흐인들의 이같은 도움을 매우 고맙게 여기고 있다 한다.
그후 억센 생명력으로 씨를 퍼트린 조선인들의 후손들은 현재 알마티에서 많이 살고 있다. 알마티의 ‘젤료니 바자르(Zelyony Bazar)’에 가면 반찬가게를 하는 고려인 상인들을 만들 수 있다. 젤료니는 러시아어로 ‘초록’을 의미한다. 과거에 초록색 야채와 과일을 주로 판매하는 시장이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안데 이 시장에 가면 고려인 아주머니들이 비록 한국말을 전혀 못하거나 서툴게 해도 한국인으로서의 정을 느낄 수 있다. 이곳 말고도 알마티에서는 종종 고려인을 만날 수 있는데 알마티에는 고려인이 약 700명 정도 살고 있다 한다.

“중국의 변방 도시 이닝에서 카자흐스탄의 알마티 가는 길”
현재 중국의 변방 도시 이닝에서 카자흐스탄으로 가는 버스가 다닌다. 국제버스를 타면 되는데 베이징 시간으로 아침 7시 30분에 출발한다. 현지 신장 위구르 자치구 시간으로는 아침 5시 30분이므로 새벽에 출발한다. 버스는 먼저 국경선의 중국 출국장에 도착하고 다시 카자흐스탄 입국 수속을 받아야 한다. 환전도 이곳에서 해야 한다. 위안화가 ‘팅게’로 바뀌게 된다. 그후 버스는 알마티를 향해 무섭게 달리고 어둠이 깔린다. 알마티에 도착하면 밤 10시경이 된다. 물론 알마티에서 중국의 변방 이닝으로도 버스가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