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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기 힘든,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K2

c.unsplash.com/Daniel Born

K2는 에베레스트산(초모룽마산)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산(8,611m)이다. 중국의 신장 위구르 자치구와 파키스탄 길기트 발티스탄 지방의 경계에 있는 카라코람 산맥에 있다. K2란 이름은 1856년 영국의 헨리 고드윈 오스틴이 이끄는 팀이 카라코람산맥(karakoram mountains)에서 두 번째로 측량한 봉우리여서 이름이 K2가 되었다고 한다. 주변의 산을 K1, K3, K4, K5 등으로 불리다가 나중에 각각 마셔브룸산, 브로드피크산, 가셔브룸 2봉, 가셔브룸 1봉으로 명명되었다고 한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지만 에베레스트보다 오르기 힘든 산”
K2는 에베레스트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산이다. 그래서 에베레스트보다 오르기 좀더 쉬울 것 같지만, 에베레스트보다 더 어렵다고 한다. 1902년 영국의 오스카 에컨 스타인과 앨리스터 크롤리가 최초로 등반을 시도하여 5차례 도전하였으나 모두 실패하였다. 그후로 52년이나 지난 1954년 7월 31일 아르디토 데시오가 이끄는 이탈리아 등정대중 아킬레 콤파뇨니와 리노라체델 리가 최초로 등정에 성공하였다.
그럼 세계에서 최고로 높다는 에베레스트 산은 어떨까? 1950년대 인도의 측정에 의하면 8,848.10m, 2005년 중국의 측정에 의하면 8,844.43m, 미국 탐사대의 에베레스트산 꼭대기에 설치한 GPS 장비에 의하면 2008년 기준으로 8,850m이다. 중국측은 바위에 덮인 얼음을 계산에 넣지 않았다고 한다. 그후 2020년 중국, 네팔의 공동 측정에 의하면 8848.86m이다. 지각의 이동에 의해 해마다 5cm씩 올라가고 있다 한다. 이 산의 최초 등정자는 잘 알려진 뉴질랜드 원정대의 힐러리와 세르파족의 텐징 노르게이가 1953년 5월 29일 등정했다. 그전에 1924년 6월 8일 영국의 조지 맬러리와 앤드류 어빈이 최초로 정상 등정에 도전했고 정상을 200여m 남긴 곳에서 마지막으로 목격되었으나 돌아오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1999년 5월 1일 수색대가 8160m 지점에서 그들의 시신을 발견했는데 그들이 등정 중에 추락한 것인지, 정상에 올라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추락한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고 한다. 그후 텐징 노르게이와 힐러리가 등정에 최초로 성공한 것을 확인받았고, 뒤를 이어 수많은 사람들이 에베레스트에 올랐다. 대한민국에서는 고상돈이 1977년에 처음으로 등정에 성공했다. 지금은 셸파들의 도움을 받아 아마추어들도 수없이 오르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에베레스트산보다 238m 정도 낮은 K2는 등정자가 적다. 난이도로 보면 가장 등정하기 어려운 산이기 때문이다. 1954년 7월 31일 아르디토 데시오가 이끄는 이탈리아 등정대중 아킬레 콤파뇨니와 리노라체델 리가 최초로 등정에 성공한 후에 23년 동안 그 누구도 등정에 성공하지 못하다가 1977년 요시자와 이치로가 이끈 일본 원정대가 등정에 성공했는데 무려 1,500명이 넘는 짐꾼들이 동원되었다. 그후 1978년 미국 등반대가 북동 릉(Northeast ridge)에 신루트를 개척하면서 세 번째로, 미국에서는 처음으로 등정에 성공한다. 2017년 기준으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사람은 4500 명이 넘는데 비해 K2 정상에 오른 사람은 306명뿐이고 또 등반 중 사망한 사람만 84명인데 대부분은 하산 중에 사망했다고 하니 얼마나 어려운가를 알 수 있다.

“K2가 위험한 이유”
K2는 이런 산이다 보니 아마추어들은 엄두를 내기 힘들다. 다만 K2 베이스 캠프까지만 트레하는데 그곳까지 가기 위해 발토로 빙하지대를 통과해야 한다. k2 봉은 다른 8천m 거봉들과 달리 주변에 거봉들이 없어 강한 바람이 정면으로 불어오고, 엄청난 구름이 몰려오며 눈보라가 몰려와 기상이 수시로 변한다. 맑은 날인데도 눈보라가 휘몰아친다. 그래서 가장 성공률이 낮은 봉우리이며(30%) 인명의 피해도 수없이 생긴다. 봄이나 가을이 아닌 계절에 오르는 것은 자살행위이며 특히 겨울에는 등정 자체가 불가능한데 2021년 1월 16일, 네팔인 셰르파 10명으로 이루어진 산악팀이 ‘동계 초등’에 성공했다고 한다. 이로써 히말라야 14좌 동계 등정에서 가장 늦게 K2 동계 등정이 완료되었다.

“K2의 등반 사고들”
사고는 종종 났지만 큰 사고가 1986년에 있었다. 1986년 8월 초순 동안 심한 폭풍으로 13명이 사망했다. 두 번째 큰 사고는 1995년 8월 중순 6명이 사망했다. 세 번째는 2008년 8월 1일 한국등반대 3명을 포함해서 하루 동안에만 무려 11명이 사망했다. 이런 등반사를 잘 아는 사람들은 베이스 캠프에서 희생당한 등반인들의 명복을 빌어주고 있다. K2에 얽힌 역사를 알아야 K2 앞에 섰을 때 감동과 감회가 밀려오게 된다.

“한국인들의 K2 등정”
1986년 8월 3일, 한국인 최초로 대한산악연맹 K2원정대의 장봉완·김창선·장병호 세 대원이 정상에 등정했다. 1986년은 전세계에서 13개 팀이 한꺼번에 몰려왔는데 등정자 중 7명이 하산 중 사망하였으니 얼마나 위험했던가를 알 수 있다. 2000년 6월 26일, 영호남합동대가 네 번째로 K2 등정에 성공했다. 박정헌·윤중현·강연룡·주우평이 정상에 먼저 서고, 3일 후에는 같은 팀 김주형·윤치원·이정현·유순욱 등 총 8명이 등정에 성공했다. 그리고 2000년 7월 30일 한국 산악회 대구지부팀의 횡기용이 등정에 성공했다. 다음날인 7월 31일에 8000m급 14개 고봉 등정 완등을 위해 등반해온 엄홍길이 속한 한국합동대의 유한규, 엄홍길, 한왕용, 박무택, 모상현이 정상에 올랐다. 이 등정의 성공으로 엄홍길은 8000m급 14개 봉 완등에 성공한다. 그리고 2001년 7월 22일 박영석이 등정에 성공하면서 14좌 완등에 성공한다. 그러나 대원 중의 한 명인 박영도가 등정을 포기하고 하산하다가 추락사한다. 그후 2002년 한왕용이 등정에 서공하면서 14좌 완등에 성공한다. 그도 하산하면서 쇠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듯한 충격을 받으면서 결국 뇌혈관 확장 수술을 받는다. 2004년 6월 8일에는 포스코팀이 등반하다가 눈사태를 맞아 3명이 사망한다. 이처럼 히말라야 고봉 14좌를 등정한 엄홍길, 박영석, 한왕용도 가장 뒤로 미룬 것처럼 K2는 힘든 곳이며 하산하다가 사고를 당하는 경우가 많아서 산악인들에게도 매우 고난도의 산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