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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열 두번째 높이의 정상이 넓은 브로드 피크

c.unsplash.com/Daniel Born

브로드 피크(Broad Peak, 8,051m)는 세계에서 열 두번째 로 높은 산으로 K2 베이스 캠프 트레킹 하는 과정에서 볼 수 있는 봉우리다. 발토로 빙하지대를 사이에 두고 K2 봉우리와 마주보고 있다. 혹은 트레킹 과정에서 꽁고르디아 캠프에서 멋진 전망을 바라볼 수도 있다. 정상 부분이 다른 봉우리에 비해 널찍해서 넓은 봉우리라는 뜻의 브로드피크라는 이름이 붙었다. 현지어로는 ‘파르찬 캉리’라고 불리고 있다.

“K3였던 브로드 피크((Broad Peak, 8,051m)”
1856년에 토마스 몽고메리 원정대가 카라코람(Karakoram) 산맥의 산들의 높이를 삼각 측량법으로 측정하면서 Karakoram의 머리글자를 따서 K1, K2, K3, K4, K5라는 봉우리 명칭을 붙였는데 그 당시 브로드 피크는 K3였고 훗날 ‘브로드 피크’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브로드 피크의 상처“
1957년 6월 9일 오스트리아 등반대가 등정에 최초로 성공했었다. 그들은 산소통, 셰르파의 도움도 없이 해냈다. 등반대 4명이 짐을 직접 운반하고 짊어진 채 전원이 모두 정상을 밟았는데, 8000m 대에선 처음으로 있던 일이다. 그중 헤르만 불은 1953년 7월 낭가파르바트산(8128m)에서 죽음을 무릅쓴 비박 끝에 단독 초등에 성공해 8000m대 봉우리 2곳을 초등한 첫 산악인이라는 영예를 얻었다. 그후 라인홀트 메스너가 로체봉(8516m)에 오르며 최초의 8000m 14좌 등정해서 무산소 등반이라는 대기록을 만들었다. 라인홀트 메스너는 알파인 스타일로 그것을 성취했는데 그의 성취는 히말라야에서 최초로 알파인 스타일을 시도한 브로드 피크 등정팀이 토대가 되었다고 한다. 알파인 스타일이란 유럽의 알프스에서 행하던 등정 스타일로 포터나 지원조 없이, 또 고정 캠프나 고정 로프, 산소 기구를 사용하지 않은 채 6명 이내의 팀이 등정하는 것을 말한다. 유럽의 알프스에서는 원래 이렇게 해왔지만 그보다 훨씬 높은 히말라야에서는 포터, 고정 캠프, 산소 기구를 사용해 왔었는데, 헤르만 불과 그의 팀이 브로드 피크 등정에서 알파인 스타일로 해낸 것이다. 그러나 헤르만 불은 브로드피크 초등 뒤 인근의 미등정봉 초골리사(7665m) 도전에 나섰다가 악천후 속에서 추락해 실종됐다.
브로드피크는 한국인들에게도 상처가 있다. 첫 도전인 악우회(1988년) 때부터 광주원정대(1995년), 경희대 산악회(1996년), 연세 산악회(1999년)의 시도에서 희생자가 나왔으며 손가락을 모두 잃은 산악인 김홍빈씨가 장애인으로는 세계 최초 8000m 14좌 완등을 이루고 하산하다 실종된 곳도 브로드피크이니 이 앞에 서면 숙연한 마음이 들게 된다.

”브로드 피크 베이스 캠프 가는 길“
이곳까지 가는 트레킹 과정은 K2 베이스 캠프까지 가는 길과 동일하다. 발토로 빙하를 사이에 두고 K2 봉우리와 마주 보고 있기 때문이다. K2 베이스 캠프 등반길에 브로드 피크 베이스 캠프도 들르게 된다. K2 베이스 캠프 등반과정, 혹은 발토로 빙하 트레킹 부분에서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지만 아스콜리부터 본격 등반을 하개 된다. 빙하지대를 올라가는 과정도 지루하고 삭막하고 고통스럽다. 고산병은 당연히 오게 된다. 그래도 그것을 이겨내고 브로드 피크 베이스 캠프, K2 베이스 캠프에 서면 눈에 뒤덮인 장엄한 봉우리들을 볼 수 있어서 감동이 밀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