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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역사상, 최초로 불법승을 갖춘 사미예(삼예) 사원

사미예(Samiye) 사원은 티베트의 수도 라싸에서 남동쪽으로 약 170km 떨어진 곳에 있다. 이곳은 티벳 불교 역사상 처음으로 佛(불상), 法(불경), 僧(승려)이 갖춰진 사원으로 티베트 불교의 만다라를 기본으로 건축한 사원으로 독특하다. 만다라 (曼茶羅)는 부처가 본 우주 법계의 모습을 형상화시킨 예배하는 단을 말한다. 고대인도에서 한 수행자가 여러 부처와 보살을 경경하는 마음에 흙으로 사각형 또는 원형의 단(壇)을 만들어 여기에 불상과 보살상을 설치한 후 수행 의식을 행한 데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만다라를 기초로 하여 건축된 사미예 사원”
티베트 불교에서는 만다라를 수행자들 수행의 한 방법으로 삼았다. 사미예 사원은 이 만다라를 형상화한 것으로 티베트 불교의 우주관을 잘 보여주고 있다. 사미에 사원의 중심에 있는 2층의 대전은 우주의 중심인 수미산을 상징하고, 이 건물의 네 방위에는 4개의 불전이 세워져 있다. 그 부근에 각각 2개의 작은 법당이 있다. 대전의 좌우 양측에 작은 소전은 각각 태양과 달을 상징하고, 대전의 모서리 부분에 있는 각 탑은 모든 악신과 마귀를 정복하여 천재지변을 제지한다는 상징이다. 그리고 이런 건물들을 타원형의 담이 둘러싸고 있다.
사미예 사원의 대전 1층은 티베트 양식으로, 2층은 중국의 한족식으로, 3층은 인도의 건축양식을 결합하여 특별하게 건축되었는데 3층은 최근에 무너져서 없어졌고, 현재는 1층과 2층만이 온전한 형태로 보존되고 있다.


“사미예 사원이 모든 티베트 사원의 기초가 되었다”
당시의 치쏭 데짼(적송덕찬,赤松德贊) 티베트 왕은 사미예 사원이 완성된 후 인도에서 열두 명의 승려를 불러와서, 귀족 자제 7명에게 머리를 자르게 하고 승려가 되게 하여 사미예 사원으로 보냈다. 그들은 그들은 “칠각사(七觉士)“ 라 불렀으며, 그들의 출현으로 티베트 불교의 기초가 이루어졌다. 또한 티베트의 모든 사원이 이곳을 기초로 지어졌기에 사미에 사원은 매우 중요한 곳이다.

“사미예 사원의 그림과 유물의 가치”
대전의 복도 양쪽으로 벽화가 가득 차 있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티베트의 역사와 티베트 불교의 생성과정 그리고 달라이 라마의 공적이 그려져 있다. 티베트 라마교 겔룩파 (황모파)의 창시자인 쫑카파가 불교를 전수하는 과정에서부터 제9대 달라이 라마까지의 역사는 장장 92m 길이의 벽화에 자세히 묘사되어 있어서 이 그림들을 보면 티베트 불교의 역사를 알 수 있다.
본전 문 앞에는 당나라 양식의 구리종이 걸려있는데, 이 종은 왕족 귀족이 탁발승이 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주조한 것으로 티베트 역사상 가장 오래된 구리로 만든 종이라 전해진다. 동문의 남쪽에는 유명한 “상예흥불증감비(桑耶兴佛证监碑)” 가 있다. 이 비석은 당시의 티베트왕인 치쏭 데짼이 799년 불교를 티벳의 국교로 한다는 내용이 고대 티베트어로 쓰여 있다.
이러한 사미얘 사원은 청나라 시절에 큰 화재로 인해서 서적과 많은 건물이 불타버렸다. 지금 남아있는 건물은 대부분 달라이 라마 6대 시대에 재건된 것으로1996년 중국 중요 문화재로 지정된 다음 지금까지도 계속 보수하고 있는 상태다.


“티베트 최초의 불교 사원을 만든 파드마삼바바”
티베트 38대 임금인 치송데첸은 국교를 불교로 선포한 왕이다. 그러나 반대가 많았다. 송첸캄포 왕이 불교의 터전을 닦았지만 불교는 왕과 몇몇의 귀족들만 믿는 종교였고 대부분의 귀족들과 백성들은 토착종교인 본교(苯教)를 믿었다. 그러니 치송데첸 왕이 불교를 국교로 선포하자 본교 사제들과 그들의 엄호 세력인 귀족들은 저항한다. 왕과 본교 신도들 사이의 갈등은 점점 심해졌다. 왕은 본교를 탄압하고 본교 사제들은 몰래 왕을 저주하는 모임을 가졌다.
이에 치송데첸 왕은 티베트 최초의 사원인 사미예 사원을 건설하여 불교를 더욱 확장하려고 했다. 그는 인도로 사람을 파견하여 당시의 유명한 승려인 샨타라크쉬타를 모셔와 사원을 짓도록 하였으나 본교 귀신들의 방해로 낮에 건축하면 밤에 무너졌다고 한다. 그러자 샨타라크쉬타는 치송데첸에게 자기의 공덕으로는 귀신을 이길 수 없으니, 자기의 제자 가운데 귀신을 다스릴 줄 아는 파드마삼바바를 데리고 오기를 부탁하였다. 파드마삼바바가 티베트로 오자 치송데첸은 많은 금을 갖고 라싸 근교에까지 마중 나갔지만, 파드마삼바바는 “나는 금을 찾으러 온 것이 아니다” 라는 말과 함께 금을 먼지로 만들었으나 그후 다시 모래를 한 줌 쥐고 주문을 외워서 다시 금이 되는 도술을 부렸다고 한다. 파드마삼바바는 스승인 샨탈크쉬타와 함께 사미예 사원으로 가서, 귀신을 물리치고 드디어 779년에 사원을 세웠으니 파드마삼바바는 티베트에 최초로 불교의 진수를 전파한 인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