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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다가스카르의 역사가 서린, 왕실 거주지 암보히망가 언덕

c.wikiloc.com/ jose moriano

암보히망가 왕립 언덕 (Ambohimanga Royal Hill)은 마다가스카르의 역사를 볼 수 있는 소중한 곳이다. 최초의 통일된 마다가스카르 왕국, 식민지 시대 직전에 외부 세계와의 교류가 시작된 곳, 현대적인 예배 장소로 왕실의 도시와 매장지, 종교적 성지 등의 고고학 유적지로 구성되어 있다. 이곳은 국가적 정체성에 대한 강한 감정들이 서린 곳으로 지난 500년 동안 영적인 의식 수행의 중심지며 왕과 조상들을 숭배하는 순례자들이 방문하고 있다. 유네스코에 의한 세계 유산으로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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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보히망가 왕립언덕”

“안보히망가(Ambohimanga)라는 이름은 "언덕"을 의미하는 ‘암보히(ambohi)와 "신성한", "파란색", "아름다운"또는 "좋은"을 의미할 수 있는 ’망가(Manga)‘의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언덕의 가장 초기에 알려진 이름은 ’치마딜로(Tsimadilo)‘였다.
암보히망가 왕립 언덕(Ambohimanga Royal Hill) 16세기부터 시작되어 18세기에 수도로 발전한 곳이다. 석문, 세 개의 궁전, 묘지 및 성지가 있는 성벽 도시는 마다가스카르 건축 양식과 유럽 건축 양식이 결합되어 있으며 언덕은 또한 신성한 숲과 호수 및 논으로 덮여 있다.
이곳은 요새화된 언덕으로 마다가스카르 사람들에게 역사적, 상징적 가치가 크다. 마다가스카르의 수도 안타나나리보에서 20km 떨어져 있지만 자동차로 가려면 대부분 1시간이 걸린다. 분주한 도심을 벗어나면 논을 따라가는 멋진 드라이브 길이 이어진다.
암보히망가(Ambohimanga)는 이 지역의 많은 언덕 중 하나다. 인접한 약간 높은 언덕에는 왕의 점성가의 무덤이 있고 이 두 언덕 사이에는 궁전의 유적이 있다. 점성가의 언덕은 지역 예배를 위한 인기 있는 장소로 걸어서 올라가야 한다.

이 지역의 귀족들은 15세기부터 이 언덕을 사용했지만 지금 보이는 대부분의 유적지는 19세기 초부터 시작된 것들이다. 마다가스카르 왕족은 난잡한 무리였다고 전해진다. 자신의 모든 연인을 죽인 여왕, 3명의 여왕과 결혼하게 된 총리에 대한 이야기들이 있다.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건축물은 전통적인 마다가스카르 목조 건물인 왕의 궁전으로 일반 주택보다 약간 크다. 바로 옆에 있는 여왕의 궁전은 1871년에 지어진 것으로 유럽의 영향이 뚜렷하다. 그 무렵 마다가스카르인은 외부 세계를 더 잘 알았고 외국 왕족과 연결되었다. 벨기에, 스페인,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선물도 보존되었다.
이곳에서 행해진 식민지 피해는 잔인했지만(프랑스인들은 마다가스카르 정신을 깨뜨려고 했다), 유적지의 본질을 파괴하지는 않았다. 이곳 방문을 마친 후에는 2시간 정도 숲 산책을 할 수 있다. 거의 식물원과 같은 이곳은 수백 년 동안 보존된 숲이다. 일부 식물은 약용으로 사용되었고 다른 식물은 차를 끓이는 잎을 제공했다. 또 나무들은 건축에 사용되었다.

“암보히망가 왕립 언덕의 역사”

암보히망가(Ambohimanga) 주변 지역을 포함한 마다가스카르의 중앙 고지대에는 섬의 초기 정착민인 바짐바(Vazimba)가 기원전 200년에서 서기 300년 사이에 처음 거주했다. 이들은 오스트로네시아 사람들로 다양한 동남아시아 및 오세아니아 그룹에서 온 사람들이다. 한편 15세기까지 남동부 해안의 메리나 종족은 점차 중부 고원지대로 이주하여 바짐바 정착지 사이로 온다. 메리나족은(이메리나, 안티메리나 또는 호바라고도 함)은 마다가스카에서 가장 큰 민족이고 국가의 5개 공식 민족 그룹 중 하나다. 그들의 기원은 주로 서기 7세기 이전에 도착한 오스트로네시아인과 혼합되어 있으며 그 다음에는 수세기 후에 대부분 반투족 아프리카인과 다른 민족들과 혼합되어 있다. 그들은 18세기까지 마다가스카르의 고원에 혁신적이고 정교한 관개 기반 시설, 벼 농장을 건설했으며 위계적 카스트, 상속된 직업 등으로 사회가 계층화되어 있었다. 그들의 주요 군주 중 한두 명은 여왕이었다. 메리나 사람들은 섬의 중앙에서 가장 많이 발견되고 18세기 후반부터 메리나 군주들은 내륙 수도에서 섬 바깥쪽으로 그들의 영향력을 확장해 나간다.

이곳에 유적을 남긴 사람들은 메리나(Merina) 종족이다. 지금 암보히망가 왕립 언덕 (Ambohimanga Royal Hill)에 건설한 도시는 17세기 초에 메리나 왕국의 안드리안자카 왕이 건설했다고 전해진다. 이 섬에 메리나족만 있던 것이 아니다. 이 섬에는 세월 속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왔는데 스와힐리-아랍인과 인도 무역상들이 섬의 북부 지역으로 왔었고 아프리카 노예들은 13세기에서 18세기 사이에 섬의 해안으로 끌려왔었다. 포르투갈 상인들은 15세기에 도착한 최초의 유럽인이었고 다른 유럽 강대국들이 뒤를 이었다. 메리나족은 그후 수많은 내전을 겪으면서 복잡한 역사를 전개시켰고 프랑스는 1885-1895년에 메리나족과 두 차례 전쟁을 벌인 후, 1895-1896년에 마다가스카르를 식민지로 만들었다.


“유적지의 인류학적 가치”

이곳의 유적지들은 거창하고 웅장하지는 않지만 흔치 않은 아프리카의 중세풍의 건축물과 역사적 의미 때문에 가치가 있다. 암보히망가 왕립 언덕(Ambohimanga Royal Hill)은 일련의 도랑과 14개의 요새화된 석조 관문이 있는 요새 시스템, 왕실을 구분하는 담으로 구분되고 공공 장소(Fidasiana), 왕의 나무, 정의의 자리 및 기타 자연적 또는 건축 된 숭배 장소, 신성한 장소 및 농경지 등이 있다. 왕도는 2개의 궁전과 작은 정자, "황소 구덩이", 2개의 신성한 대야, 4개의 왕릉으로 구성되어 있다.
거창하고 웅장한 역사 유적지에 익숙한 외부인의 눈으로 보면 작고 아담한 집들이 아기자기하게 늘어선 모습은 너무 소박하고 단순해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곳의 유적지는 인도양의 섬에서 16세기에서 19세기 사이의 인류 역사의 중요한 시기를 보여주는 건축과 그것과 연관된 문화 경관(나무, 신성한 분수 및 호수)을 잘 보여주고 있다. 마다가스카르 국민들은 여전히 이곳을 중요시하고 이곳의 영성을 흡수하기 위해 방문하고 자신들의 축복을 기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