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산남로와 찬산북로가 갈리는, 우루무치
우리 핏속에 기마민족의 혼이 깃들여 있고, 뼛속에 바람처럼 초원을 달리던 기억이 서려 있어서일까, 우리는 천산북로, 천산남로라는 말을 들으면 흥분된다. 말을 타고 저 넓은 초원을 달려보고 싶고, 기차를 타고 천산산맥을 따라 끝없이 서쪽으로 가고 싶은 충동이 솟구친다. 누구라도 기차나 버스를 타고 가며 창밖으로 눈 덮인 천산산맥을 보면 그런 기분을 느끼게 된다. 그 천산로의 중요한 위치에 우루무치가 있다. 천산북로와 천산남로가 갈라지는 분기점이다. 북쪽길을 달리면 천산북로, 즉 초원의 길을 따라 카자흐스탄쪽으로 가게 되고, 남쪽으로 가게 도면 타클라마만 사막을 따라가는 사막의 길이 시작된다. 그 길 끝에 카슈가르(커스)라는 오아시스가 나오고 계속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가면 파키스탄으로 가게 된다.
“우루무치 가는 길”
투루판에서 기차를 타거나 버스를 타고 계속 서쪽으로 달리면 우루무치가 나온다. 창밖으로 하얀 눈덮인 천산산맥을 보면 가슴이 뛴다. 만약 버스를 타면 투루판에서 우루무치는 4시간 길인데 중간에 버스가 천산산맥의 일부를 넘는다. 멀리서 바라본 눈 덮인 천산산맥은 신비롭지만 막상 다가가면 거대한 암벽과 메마른 계곡으로 이루어진 황량한 돌산이다. 한 시간 정도 험한 천산을 오르면 물이 흐르는 계곡이 나오고 뒤이어 푸른 초원과 양떼, 싱그러운 나무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드디어 천산북로, 즉 초원의 길로 접어든 것이다.
이 동서 문물 교류의 길은 주인이 여러 번 바뀌었다. 유목민이었던 흉노족 돌궐족 몽골족이 그들로 기개가 대단했었다. 13세기 몽골의 구유크 칸(3대 정종)은 로마교황에게 이런 서한을 보냈었다.
“하늘에는 오직 하나의 신이 있고 땅에는 오직 하나의 군주 칸이 있다. 말이 달릴 수 있는 땅에 사는 자, 귀가 있는 자 모두 들을지어다. 우리에게 도전하는 자는 눈이 있어도 볼 수 없고, 붙잡으려 해도 손이 없으며, 걸으려 해도 발이 없게 될 것이니라. 신은 짐에게 해뜨는 곳에서 해지는 곳까지 모든 영토를 부여했노라.”
그러나 지금은 한족이 지배하는 길로 산업화의 물결이 밀려드는 현장이다. 초원에는 풍력발전을 위해 만들어진 대형 바람개비들이 가득 차 있고 버스 안에서는 위구르 말의 랩음악이 울려 퍼지며, 시도 때도 없이 휴대전화 소리가 울려댄다. 그리고 도시에는 엄청나게 높은 건물들이 솟구쳐 있다.
“현대화되고 있는 우루무치”
우루무치는 신장성의 성도다. 몽골말로 ‘초원의 목장’이란 의미의 이 도시는 해발 800미터의 초원지대로 예로부터 위구르족은 물론 타지크, 카자흐, 몽골족 등이 살던 곳이었다. 예전에는 천산 북로의 요충지로 초원의 길에 있는 아름다운 목장이었겠지만 지금은 현대화의 물결이 불어 우루무치는 고층 빌딩들이 우후죽순처럼 솟아난 거대한 도시가 되었다. 우루무치는 위구르족 자치구의 중심지고 예전에는 위구르족 등의 소수 민족들이 많았겠지만 지금은 한족이 70% 넘게 차지해서 여느 중국의 대도시에 온 느낌이 든다. 특히 요즘 들어와서 한족을 정책적으로 이주시키고 발전시켜 이곳은 중국화가 많이 되었다.
“신장 위구르 자치구 박물관”
이곳은 꼭 들러볼 만하다.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문화와 역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곳이다. 이곳에는 신장 지역에서 출토된 4만여 점의 우물이 전시되어 있다. 위구르 족만이 아니라 카자흐족, 타지크족, 몽골족 등 12개 소수민족의 관습, 종교, 음식 등에 대해서 알 수 있다. 또한 실크로드에서 발견된 문화재와 신장에서 출토된 미라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곳의 미라는 건조해서 약품 처리하지 않은 상태에서 미라가 되었다고 한다.
“천산산맥에도 천지(天池)가 있다.”
이런 풍경 속에서 서역의 정취를 느끼고 싶으면 천지(天池)로 가야 한다. 백두산에만 천지가 있는 것이 아니라 서역 땅 천산 산맥의 깊은 골짜기 해발 1910m에도 천지가 있다. 천지까지는 시내에서 동쪽으로 110km 정도 떨어져 있다. 인민공원 앞에서 떠나는 버스를 타면 천산산맥 중턱의 천지 매표소까지 한 시간 반 동안 가고, 거기 내려서 셔틀버스를 타면 40분 정도 걸려 천지 근처에 도착한다.
계절에 따라 이곳은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여름, 가을에는 물감을 풀어 놓은 듯한 짙은 남색의 물이 넘실거려서 유람선을 타고 천지를 돌아볼 수도 있지만 겨울에는 천지의 물이 꽁꽁 얼어 있고, 5월 초에도 여전히 얼어 있다. 멀리 주봉인 보거다(博格達·5445m) 정상의 흰 눈이 햇빛을 받아 빛나는데 신비롭기 그지없다. 천지는 면적 3㎢에 수심이 100여m인 거대한 호수다. 한민족이 백두산의 천지를 숭배하듯이 이 근처의 부족들도 천지를 신성시했었다. 기원전 1000년쯤 주나라 목왕이 천지에 올랐다가 호수에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수영을 즐기는 한 여인을 보았다는 전설이 있다. 그 여인은 바로 서쪽 나라를 다스린다는 전설의 서왕모였다. 서왕모는 원래 반인반수(半人半獸)의 흉측한 모습에 재앙과 죽음을 관장하며 영생과 불사의 능력을 지닌 생명의 여신이었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죽음보다는 생명의 여신으로 숭배되었다.
이곳에는 카자흐족들이 텐트를 쳐 놓고 숙소를 운영하기도 하는데 텐트 안에는 난로를 피워 놓고 손님들을 맞이하기도 한다. 이런 곳에서 천지를 보면 백두산 천지를 신성시한 우리 민족도 생각을 하게 된다. 언어학자 강길운 박사는 ‘고대사의 비교언어학적 연구’라는 책에서 이렇게 얘기한다.
“배달이란 말은 박달에서 왔으며 이것을 이두문으로 백산(白山)이라 표기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거의 일치한다. 다만 박달의 의미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는데, 언어학적으로 보면 ‘박(바쿠)’ 만주어로 호수를 뜻하고 ‘달(타아르)’은 터키어로 산을 뜻한다. 그러니 박달이란 곧 ‘호수가 있는 산’을 의미했고 이는 천지가 있는 백두산을 지칭하는 고유명사로 되었다. 그러므로 배달 민족은 호수가 있는 산을 신성시하고 그 주변에서 사는 민족을 일컫는다고 추정된다.”
이 설이 맞는다면, 호수를 신성시한 우리 민족으로서 천산 산맥의 천지도 남다르게 다가온다. 이 부근의 민족들은 천산산맥의 천지를 숭배하고 살았었다.
“난산목장(南山牧場)
우루무치에서 남쪽으로 60km 떨어진 목장으로, 옛날에 카자흐 족이 방목하던 목장이다. 해발 1600- 190m 높이에 있는 목장으로서 매우 아름답다. 탁 트인 초원, 풀, 계곡이 낭만적인데 이곳에서 승마 체험, 유목 민족의 집인 겔(유르트. 파오) 등에서 묵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