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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역 최대의 오아시스, 카슈가르(카스)

카슈가르는 서역 최대의 오아시스다. 중국인들은 이곳을 커스(喀什)라고 말하고 위구르인들은 카슈가르라고 부른다. 카슈가르는 타클라마칸 사막에 있는 거대한 오아시스로 중국의 신장 위구르 자치구 제2의 도시다. 신장성의 성도가 우루무치지만 위구르인들은 카슈가르를 자신들의 고향으로 여기고 있다. 물론 이곳도 현대화, 중국화가 급속하게 진행되어 옛날의 모습은 아니지만 그래도 위구르족들의 전통이 지켜지고 있는 서역 최대의 오아시스다.

“카슈가르 가는 길”
예전에는 말이나 낙타를 타고 타클라마칸 사막을 몇 달에 걸쳐 횡단해야 도착할 수 있던 길이다. 지금은 우루무치에서 카슈가르까지 기차를 타면 24시간 만에 돌파한다. 황량한 타클라마칸 사막에서 끝없이 이어지는 전신주와 가끔씩 보이는 대형 간판을 보면 사막보다, 황사보다 더 무서운 것은 인간의 생존 의지, 욕망이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끝없이 펼쳐지는 황량한 벌판과 희미해져가는 지평선을 보면서 자연의 위대함에 감탄하기도 한다. 그렇게 24시간을 달려 카슈가르에 도착하면 도시의 활력에 놀라 잠시 어리둥절해진다.
이 도시는 돈황에서 갈라졌던 실크로드의 갈래인 서역북도와 서역남도가 합류하는 지점이다. 돈황에서 갈라졌던 두 길은 카슈가르에서 만나 히말라야 산맥, 파미르 고원을 넘어 파키스탄 쪽으로 넘어간다 신라의 혜초 스님과 당나라의 현장법사도 천축에서 불경을 얻고 중국으로 돌아올 때, 카슈가르를 가로질러 장안으로 갔었다. 오랫동안 실크로드의 오아시스 도시로 번영을 누리던 카슈가르는 실크로드가 그 중요성을 상실한 후, 잊혀져 갔다. 그러나 수많은 종교, 문화가 뒤섞여서 만들어낸 카슈가르의 문화유산은 여전히 소중하다.

“카슈가르는 위구르인의 마음의 고향”
카슈가르는 오아시스다. 오아시스라면 언뜻 호수 주변에 야자나무가 서 있는 낭만적인 풍경을 연상할 테지만 서역 최대의 오아시스의 중심부에는 멋진 현대식 빌딩들이 들어서 있다.
카슈가르의 중국어 명칭은 카스(喀什)이나, 위구르족은 모두 카슈가르라 부른다. 이곳 인구는 약 230만 명으로 원래 그중 90%가 위구르족이고 나머지 10%가 우즈베크족 등 소수민족이었으나 이젠 정책적인 이주로 거리에 한족들이 매우 많이 눈에 띈다. 그러나 카슈가르는 여전히 위구르족의 도시고, 그들의 마음의 고향이다. 과거 이 지역은 동투르키스탄으로 불리던 지역으로 청 왕조에 점령되어 신장성이 되었다가 20세기 들어서면서 다시 중국으로부터 분리 독립을 꾀하고 있지만 중국에 의한 현대화와 중국화는 빠른 소도로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이곳의 주민인 위구르족은 중국인들과는 생김새나 문화가 다르다.
시내에 있는 에이티갈 모스크는 1442년에 건립된 유서 깊은 모스크로, 매일 5천 명 이상의 사람들이 모여 기도를 하고 금요일에는 1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찾는 카슈가르 최대의 모스크다. 근교에 있는 아팍 호자의 묘는 위구르족의 정신적 의지처다. 이슬람교의 시조 무함마드의 직계 자손인 아팍 호자는 17세기 이곳으로 와서 이슬람교를 전파한 후 이곳을 다스렸다. 그래서 이 건물을 현지인들은 ‘아팍 호자의 성묘’라고 부른다. 녹색 타일로 뒤덮인 아름다운 모스크 안에는 아팍 호자와 그 가족의 묘가 안치되어 있고 향비의 묘도 이곳에 있다. 향비는 아팍 호자의 손녀로 서역을 정벌했던 청나라의 건륭제에게 후궁으로 바쳐졌었다. 그러나 향비는 고향을 잊지 못하고 향수병으로 죽고 말았다(자결했다는 설도 있다). 그녀가 죽고 난 후, 카슈가르에서는 향비의 시신을 운구하여 이곳에 안치했는데 오는데 3년이 걸렸다고 한다. 그래서 이 건물을 일명 ‘향비묘’로도 블린다. 묘 인근에는 그녀를 운구할 때 썼던 상여도 전시되어 있다.

“카슈가르의 가장 큰 볼거리, 일요시장”
‘한서’의 서역전에도 시열이 유명하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시열은 시장을 말한다. 카슈가르는 천산남로를 거쳐온 상인들과 파미르 고원을 넘어 온 서쪽의 상인들이 만나는 곳이어서 자연히 시장이 크게 열렸었다. 예전에는 일요일 아침이면 당나귀 수레에 엄청나게 물건을 싣고 와서 장터에 노점을 깔고 팔아서 흥청거리는 열기가 있었는데 지금 그 풍경은 사라졌다. 중국 정부가 세로 길이 200m, 가로 길이 300m에 이르는 내부를 7개의 열로 구분해 종류별로 상가를 나눠서 상인들을 입주시키는 바람에 질서정연해졌다. 예전의 시골 장터같은 열기가 아쉽지만 그래도 여전히 활력은 넘치고 외부에서 오는 이들은 낯선 이국적인 장 풍경 앞에서 흥분을 하게 된다.

“카슈가르의 구시가지, 올드 타운”
카슈가르는 지금 중국화, 현대화가 많이 진행되서 신시가지는 여느 도시처럼 현대적인 빌딩, 대로가 있지만 구시가지로 가면 옛 모습이 남아 있다. 돌담길에는 크고 작은 위구르족의 상점과 음식점들이 들어서 있고, 거리에서는 양의 창자로 만든 한국의 순대와 맛이 비슷한 ‘웹갸이습’을 맛볼 수 있다. 거리에는 당나귀에 배추, 양파, 마늘 등 채소와 온갖 짐을 실은 사람이 급할 것 없다는 듯이 나귀를 몰고 있고, 머리에 이슬람 특유의 하얀 모자를 쓰고 전통의상을 입은 위구르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다. 또 에이티갈 모스크 근처의 뒷길은 저녁 때가 되면 노천 식당들이 들어선다. 양고기 꼬치구이인 시시케밥을 굽는 연기가 거리에 자욱하고, 사람들의 물결로 흥청거린다. 저녁나절 구시가지 거리를 어슬렁거리다 좌판에 앉아 이들의 주식인 난(밀개떡)에 매콤한 양념에 버무린 시시케밥을 넣어 먹고, 주인의 순박한 웃음과 현지인들의 호기심 어린 눈초리를 접하는 순간, 그제서야 여행자들은 자신이 멀고 먼 서역 땅에 앉아 있음을 느끼게 된다.
돌담으로 쌓인 미로 같은 골목길을 터벅터벅 걷다가 마주친 아이들이 문 뒤에서 몰래 훔쳐볼 때, 마주 오던 아름다운 전통 복장의 위구르 여인이 살짝 낯을 붉히며 고개를 숙일 때, 온몸에는 짜릿한 희열이 흐른다. 카슈가르는 그런 곳이다. 대단한 관광지는 아니지만 세상의 변경에 와 있는 듯한 희열을 맛볼 수 있는 낯설고도 즐거운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