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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의 수도이며 최대 도시, 울란바토르 (붉은 영웅)

c. unsplash.com/Andy Bridge

울란바토르는 몽골의 수도로 몽골의 최대 도시다. 하지만 인구 밀도로 보면 울란바토르르는 텅 빈 것처럼 다가온다. 울란바토르의 면적은 4,707.4km2이고 인구는 약 160만명(2021)이다. 서울의 면적 605km2에 인구 약 1천만 명을 비교하면 울란바토르는 텅 빈 곳이다. 울란바토르는 면적이 서울보다 약 8배인데 인구는 서울의 6분의 1이다. 몽골이라는 나라를 비교해도 그렇다. 몽골의 면적 156만km2에 인구는 약 345만명(2023)이다. 한반도 면적 22만km2에 남북한 총 인구수 7700만 명을 비교하면 몽골의 국토는 한반도의 7배이면서 인구는 22분의 1이다. 하지만 울란바토르의 중심지에 많은 건물들, 주거지들, 관광지들이 몰려 있어서 돌아다니기에 불편하지 않다.

“울란바토르는 몽골의 중심이다.”
수도인 울란바토르는 역사적으로 정치, 사회, 경제적으로 몽골의 중심으로써 많은 것을 간직하고 있다. 울란바토르의 발음은 러시아어 표기를 읽은 것이고 몽골식으로 발음하면 ‘우흘람파터르’에 가깝다고 한다. 울란바토르의 역사는 몽골이 청나라의 지배를 받던 1639년부터 시작된다. 청나라 시대에는 '울타리를 친 초지'라는 뜻의 쿠룬(:庫倫, 고륜)이라고 불렀고 1639년에 지금의 장소에 수도의 터를 잡았다. 그리고 그때부터 1706년까지 몽골어로 우르구라고 불렀으며 1778년에는 몽골에 위치한 여러 지명과의 구별을 위해 이흐 후레, 또는 대고륜(大庫倫)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1911년부터 1923년까지 니슬렐 후레라 불렀는데 1919년 중화민국군이 진주했고, 그후 러시아 제국군이 점령했다. 1921년 소련 공산당의 지원을 받은 담딘 수흐바타르가 군대를 이끌고 돌아와 이들을 축출하고 복드 칸을 복위시키면서 해방되었다. 이후 1923년 수흐바타르가 사망하자 그를 기리기 위해 1924년 지금의 이름인 울란바토르가 되었고 그 뜻은 ‘붉은 영웅’이란 뜻이다.(즉 수흐바타르가 붉은 영웅이다. 울란은 붉다는 뜻, 바타르는 수흐바타르에서 따온 말이다. 그래서 울란바타르라고도 불리는데 우리는 표기를 울란바토르라 하고 있다. )
몽골 인민 공화국이 수립된 이후인 1950년대부터 도시계획에 따라 소련식 아파트를 비롯한 여러 건물들이 들어섰으며 오늘날 울란바토르의 대부분의 건물들은 1960년부터 1985년 사이에 건설되었다. 그후 소련 공산권이 망하면서 1990년 몽골 혁명이 일어난다. 몽골은 개혁 개방 정책을 취하면서 급속한 경제 성장을 했다. 요즘에는 한국기업과 유통업이 많이 진출해서 신시가지에는 한국 편의점들, 이마트 등이 진출했고, 한국식 노래방, 한국 식당, PC 방은 물론 탐앤탐스, 카페베네 등도 보여 한국에 온 느낌조차 든다. 또한 피자헛, KFC, 현대식 클럽, 펍 등도 있다. 이런 변화 속에서 생기는 문제들도 함께 가진 채, 울란바토르는 변화하고 있다.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의 현실”
울란바토르는 몽골 전체 인구인 345만 명 중에서 절반 정도인 160만 명 정도가 모여 사는 대도시다. 몽골의 제2 도시인 에르데네트의 인구가 불과 10만 명인 것을 비교하면 몽골에서 울란바토르의 위상이 어떤가를 실감할 수 있다. 울란바토르는 지금도 인구가 조금씩 증가하고 있는데 그 이유 중의 한 가지는 이상 기후와 환경 파괴 등으로 유목 생활이 힘들어진 몽골 초원, 사막의 유목민들이 도시 주변으로 몰려들기 때문이다. 울란바토르의 외곽에는 그들이 만들어 놓은 전통적인 게르와 낡은 가옥들이 뒤섞인 슬럼가가 있다. 대초원에서는 몽골의 전통과 낭만을 간직한 게르들이 대도시에 오면서 빈민들의 주거지로 전락한 것이다. 울란바토르도 중심부의 아파트는 비싸져서 외국인들이 많이 살고 돈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은 외곽으로 밀려나 게르에서 사는 것이다. 몽골 전체든, 울란바토르든 밀도가 매우 희박하므로 이들은 공터에 값싼 게르를 짓고 있다.

“울란바토르의 지리 및 기후”
울란바토르는 평균 해발 약 1,350m에 있다. 남쪽으로는 넓고 숲이 우거진 복드칸산(2,250m)이 있다. 울란바토르는 짧고 따뜻한 여름과 길고 매우 추운 겨울을 갖고 있어서 세계에서 가장 추운 도시라 일컬어지고 있다. 가장 추운 1월 최저 기온은 -36 ~ -40 °C 에 이른다. 그러나 4월 말에서 10월 초까지는 따뜻한 편인데 한여름에는 이상 기온으로 대단히 더운 39도까지 이르기도 했다.
울란바토르에는 칭기즈칸 국제 공항이 있다. 시내에서 남서쪽으로 18km 떨어져 있는데 옛날 이름은 부얀트 우크하 공항이었다. 칭기즈칸 공항은 몽골에서 유일하게 국제선이 취항하고 있으며 새로운 울란바토르 국제공항이 현재 건설되고 있다.
울란바토르는 몽골 주요 도시 대부분과 도로로 연결되지만 도로 상태가 좋지 않고 표지판도 적어서 도로 이동이 어려울 수 있다. 여행을 하려면 여행사의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현재 몽골에서는 울란바토르와 지방의 주요 도시를 연결하는 고속도로 건설 등을 계획하고 있고 울란바토르의 지하철 건설을 계획하고 있다. 현재는 시내버스, 개인 소유 소형버스 그리고 택시 등이 운행되고 있다.

“울란바토르의 관광지”
울란바토르의 중심지는 그다지 넓지 않아 걸어서 둘러볼 수 있다. 중심에는 칭기즈칸 광장이 있다. 원래 수흐바타르 광장으로 불리었는데 2013년 칭기즈칸 광장으로 이름이 바뀌었지만, 현지인들은 여전히 수흐바타르 광장이라 부른다. 수흐바타르 장군은 중국과 러시아로부터 몽골을 독립시킨 혁명가로 그의 동상과 칭기즈칸의 통상이 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의하면 담딘 수흐바타르가 외국군을 물리치고 이 도시로 개선할 때 말이 지금의 동상 자리에 소변을 보았고, 이걸 길조로 여긴 몽골인들이 그 자리에 말뚝을 박아놓았다고 한다. 후에 도시정비사업을 하면서 이 말뚝이 발굴되어 말뚝이 있던 곳에 수흐바타르 동상을 세웠고 그 동상을 중심으로 광장을 만들었으며 광장 북쪽에 몽골 국회의사당을 만들었다고 한다.
현재 국회의사당 건물 앞 중앙에는 칭기즈칸 동상이 있는데 이를 기준으로 좌측에는 오고타이 칸, 우측에는 쿠빌라이 칸 동상이 있다. 현재 칭기즈칸 광장은 울란바토르 최고의 랜드마크로서 각종 국가적 행사, 문화행사, 인기가수 콘서트, 결혼사진 촬영지, 혹은 크고 작은 시위 등의 장소로 이용되고 있다. 광장 앞에는 한국인이 투자해서 만든 블루 스카이 타워라는 이름의 돛 형태의 커다란 빌딩이 있다. 이곳은 몽골에서 제일 높은 빌딩(105m)으로 주변에 한국 식당들도 많이 있으며 남양주시와 자매도시를 맺은 인연으로 남양주 거리도 있다.

울란바토르의 중심지는 많은 것이 밀집되어 있어서 돌아보기 편하다. 대개 북서쪽의 간단 사원에서부터 출발하여 걸어내려 오며 이곳저곳을 돌아볼 수 있다. 간단 사원(Gandan Monastery)은 몽골에서 가장 큰 불교사원으로, 공산주의 정권하에서도 몽골에서 유일하게 종교 활동을 보장받았던 곳이다. 17세기에 세워진 이 사원 내부에는 거대한 불상이 있다. 약 150여 명의 라마승들이 거주하고 있으며 다양한 종교행사가 열린다.
몽골 국립 역사 박물관(National Museum of Mongolian History)에는 석기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수천 점의 역사적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4만년 전 동굴 벽에 그린 말타는 모습의 그림과 몽골 사람들의 다양한 전통 복장, 400여 종에 달하는 몽골의 모자, 전통 악기, 생활용품, 칭기즈칸에 관련된 자료들이 매우 많다. 자이승 승전탑은 몽골이 소련과 함께 연합국에 대해 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것과 몽골사회주의 혁명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소련이 1971년 몽골에 기증한 탑이다. 울란바토르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울란바토르 시내의 전경을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이다.
자나바자르 불교 미술관, 몽골 국립 현대 미술관도 있고 고비 사막에서 발견된 공룡중앙 박물관도 있다. 또 복드칸 겨울 궁전 박물관(Bogd Khan Palace Museum)은 몽골의 마지막 황제 복드칸이 살던 겨울 궁전으로 현재는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1893년부터 짓기 시작해 1903년에 완공되었으며, 세계의 왕들에게 받은 선물, 몽골 왕과 왕비의 침실, 복드칸이 수집한 박제 동물들이 주로 전시되어 있고 18~19세기 티베트 지역에서 활약했던 작가들의 불교 작품도 많이 전시되어 있다.
이태준 열사 기념공원도 있다. 이태준 선생(1883년~1921년)은 1914년 몽골에 입국하여 '동의의국'이라는 병원 개업 후 몽골인들에게 근대적 의술을 베풀면서 각지의 애국지사들과 연계하여 항일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태준 선생은 1921년 울란바토르(Ulan Bator)를 점령한 러시아 백군에 의해 살해되었는데 2000년 7월 7일 이태준 선생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서, 재몽골한인회와 연세의료원이 주축이 되어 ‘이태준 기념공원’을 건립하였다. 이곳은 빨리 돌아보면 한나절이면 되지만 천천히 박물관, 미술관 등을 감상하고, 곳곳에 있는 아시아, 유럽, 미국 요리를 하는 식당에 들러 음식도 즐기고, 커피도 마시며 천천히 즐긴다면 하루 종일 다닐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