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중심, 보로부드르 사원에 오르다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바이욘 사원 등의 수많은 불교사원, 힌두교 사원이나 한국의 절과 대웅전도 수미산에 있는 극락을 형상화시킨 것이다. 기독교의 고딕양식도 하나님을 향하는 염원을 표시하느라 하늘 높이 치솟았듯이, 불교, 힌두교의 건축 양식도 부처님, 신, 극락세계를 향해 위로 솟았다. 그러므로 보로부드르 사원 정상에 오르는 것은 우주의 중심, 극락세계, 해탈의 세계에 오르는 것이다.
“인류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 보로부두르 불교 사원”
세상에는 안 가도 가본 것처럼 느껴지는 곳들이 많다. 텔레비전, 유튜브, 사진을 통해서 이미지가 너무 많이 유포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도네시아 자바섬 중부에 있는 보로부드르 사원은 ‘죽기 전에’ 직접 꼭 가볼 만한 곳이다. 불교 신자가 아니라도 그렇다. 우리 인류의 자랑스런 문화유산이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 자바(Java)섬에 욕야카르타(Yogyakrta, 족자카르타)라는 도시가 있고, 여기서 서북쪽으로 약 40㎞ 떨어진 곳에 세계 문화사에 길이 남을 거대한 보로부두르(Borobudur) 불교사원이 있다. 거대한 불교의 탑들이 모여 산처럼 솟아 있는데 불교든, 힌두교든 이런 사원은 우주의 중심에 있다는 ‘수미산(메루산)’을 형상화한 것이다.
“보로부드르 사원은 누가, 언제,만들었을까?”
이 사원은 언제, 누가 만들었는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모든 것은 추측 속에 남아 있다. 그 추측을 하려면 자바섬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
자바의 전설에 의하면 1세기 무렵 인도인이 불교를 전파했다. 그러나 414년에 인도를 여행하고 돌아오는 길에 자바섬에 들러 약 5개월간 체류했던 중국 승려 법현(法顯)의 ‘불국기(佛國記)’에 보면 그 당시 힌두교도 널리 퍼졌다고 한다.자바섬에서는 이처럼 불교와 힌두교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함께 발전했는데, 8세기 중엽에 나타난 마타람 왕국은 힌두교를 믿었고, 근처에서 일어난 사이렌드라 왕국은 불교를 믿었다. 이 두 왕국은 서로 경쟁하는 가운데 사이렌드라 왕국이 마타람 왕국을 눌렀지만 9세기 중엽쯤에 사이렌드라 왕국도 멸망한 것을 추측된다. 하여 보르부두르 사원은 9세기쯤, 즉 790 –860년대쯤 사이렌드라 왕국이 만든 것으로 보이지만 추정이다. 사이렌드라 왕국 자체가 수수께끼에 싸여 있고 어떤 과정을 통해 망했는지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보로부두르 사원의 발굴과정”
보로부두르 사원의 벽돌과 그 위에 덮인 흙의 성분이 같아서, 만들어진지 얼마 안 되어, 근교의 메라피 화산 폭발로 매몰된 것으로 보이지만 정확하지는 않다고 한다. 홀연히 사라졌던 보로부두르는 900년 정도 땅 속에 파묻혀 있다가 우연한 기회에 다시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낸다. 1814년 당시 자바를 통치하던 영국인 총독 토머스 스탬포드 래플스(Thomas Stamford Bingley Raffles)는 현지인들로부터 보로부두르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듣고 조사를 지시한다.
스탬포드 래플스는 영국의 정치인이자 탐험가로 1819년 싱가포르를 만든 사람이다. 원래 자바섬은 네더란드가 지배하고 있었는데 영국이 네덜란드로부터 자바섬을 빼앗아 잠시 지배한 적이 있었다. 스탬포드 래플스는 1811년부터 15년간 자바섬을 통치하면서 보로부드르 사원의 발굴을 지시했다.
이 사원은 주변의 인도네시아인들은 다 알고 있었지만 거대한 밀림과 화산재에 덮여 있어서 발굴하는데 시간이 걸렸다. 결국 20여년 후인 1835년, 현재의 모습이 드러났고 유럽에 널리 알려졌다. 흔히, 스탬포드 래플스가 보로부드르 사원을 발견했다고 하지만 사실은 아니다. 앙코르 유적지도 그랬지만 이 보로부드르 사원도 이미 현지인들은 다 알고 경배의 대상이었다. 다만 밀림과 화산재에 덮인 것을 걷어내서 유럽에 크게 알린 것이 그의 공이었다.
어쨌든 그의 덕택에 세계 고고학계는 놀랐고 많은 학자들은 앙코르와트에 버금가는 인류의 문화유산이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으며 현재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그의 열정 덕택에 보로부두르 사원이 인도네시아 최고의 관광지가 되었다.
“보로부두르 사원의 구조”
보로부드르 사원은 멀리서 보면 산처처럼 솟아 있다. 9층의 계단식 구조로 되어있고 500개 이상의 부처 조각상이 있으며 부처의 가르침을 묘사한 수천 개의 부조로 장식되어 있다.
이것은 건축법이 독특하다. 불에 강하고 세공하기 좋은 화산암 벽돌 100 만개를 차곡차곡 쌓아서 1층을 만들고, 그 위에 2층을 올렸는데 내부에는 공간이 없다. 이런 방식으로 쌓다 보니 그 무게가 대단하다. 올라갈수록 폭이 좁아지는데 2층에서 5층까지는 폭 2m의 회랑이 만들어져 있고, 이 회랑의 벽에는 불교 설화와 관련된 1500여개의 부조가 새겨져 있다.
회랑을 따라 부조를 감상하며 한 층씩 올라가다 6층으로 올라서는 순간 정사각형의 넓은 단이 펼쳐진다. 이곳은 꽤 넓은 공간이어서 테라스라고 불리는데, 확 트인 파란 하늘과 평원 그리고 저멀리 화산이 보이는 매혹적인 풍경을 보게 된다.
이 위부터는 원형의 단이 있고 그 단 위에는 커다란 종 모양의 스투파(탑)들이 7층 단에는 32기, 8층에는 24기, 9층에는 16기가 있는데 중앙에 가장 크고 높고 큰 스투파가 자리잡고 있다. 이 스투파의 지름은 16m다. 그리고 스투파들 사이에 거대한 불상이 앉아서 명상을 하고 있다. 스투파 안에는 각각 1구의 불상이 들어 있는데, 현지인들은 빈틈 사이로 오른손을 넣어 약지로 불상을 만지면 행복이 온다고 하여 너도나도 손을 집어넣는다.
(이것이 옛날의 모습이다. 지금은 철저히 관광객 관리를 하여 정해진 길만 따라다니게 하고 있다.)
“보로부두르의 의미”
‘보로부드르’의 이름에 대한 의미도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산스크리트어로 ‘보로’는 ‘승방(僧房)’, ‘부두르’는 ‘높게 쌓인 곳’을 의미하여 ‘높은 언덕 위에 세워진 승방’이란 설이 있다. 또 다른 설도 있다. 사이렌드라 왕가 계통의 한 여성이 842년에 사원 ‘캄란이 부미상 바라부다라’에 논을 기증했다는 비문이 발견되었는데 ‘캄란이 부미상 바라부다라’를 산스크리트어로 풀이하면 ‘깨달음의 단계로 가게 하는 여러 법을 상징하는 산’을 의미한다. 그런데 부미상 바라부드라(Bhumisam Bharabhudhara)에서 뒤의 바라부드라(Bharabhudhara)가 변하면서, 즉 알파벳 ‘에이’가 ‘오’로 와전되어 현재의 보로부두르(Borobudur)가 된 것으로 추정하는 설도 있다.
“보로부드르 사원을 만든 의미”
이 사원은 왜 만들었을까?
그것도 확실치 않다. 왕의 무덤인지, 왕조의 사당인지, 불법을 형상화한 만다라인지 기록이 없어 확실치 않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곳에 오르면 그 옛날 사람들이 극락을 향한 염원히 느껴진다는 것. 드넓게 펼쳐진 평원을 내려다보며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면 그것이 느껴진다. 우리 모두, 이 고통과 갈등의 세상을 벗어나 절대 평화의 세계를 원하지 않던가? 그들의 염원을 느끼는 순간 감동이 밀려온다.
“보로부드르 사원에서 만나는 현지인들”
이곳은 새벽에 가서 일출을 보면 더욱 장엄한 광경과 감동을 느낄 수 있다. 해가 떠오르기 시작하면 덥다. 인도네시아의 더위는 어딜 가나 우리를 괴롭힌다. 하지만 그 무렵 이곳에 관광하러 온 인도네시아 학생들이 다가와 ‘어디서 왔어요, 하는 일은 뭡니까, 인도네시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요’등을 묻는다. 영어 회화연습을 하는 학생들이 많다. 선생이 과제를 내주면 그것을 들고 다니며 공부하는 것이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한데 요즘 달라진 것은 ‘한국인’이라 하면 연예인 대접을 해준다는 것. K-POP의 인기가 대단하다. 한류를 실감하는 순간이다. 그들은 한국 여행자들을 특히 더 반가워하며 한국어로 인사하고, 사진도 찍자고 해서 반갑지만 너무 많아지면 정신이 없다. 즐기느냐, 피하느냐 그 선택은 당신의 몫이다.
그래도 그런 이들을 만나면 친절하게 답해주시라. 비록 고즈넉한 시간 속에서 보로부드르의 장엄함을 즐길 수는 없지만 한국인을 반가워하는 이들이 고맙다. 그들과 대화하는 시간은 무더위 속에 지친 여행자들의 기운을 북돋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