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끝, 브로모 화산에서 새로운 세상을 맞는다.
세상의 끝에 다다른 느낌을 주는 브로모 화산. 일출시에 그 숭고함이 더해지기에 많은 사람들이 해돋이에 맞춰 브로모 화산을 오른다. 사람들은 새벽 4시 무렵부터 지프차를 타고 세상의 끝을 향해 달린다. 새벽 어둠, 황량한 화산 지대, 붉은 태양이 솟는 가운데 드러나는 외계 행성의 모습 같은 화산들을 보며 새로운 세상을 맞는다. 그 감동과 희열을 맛보기 위해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순례하듯이 브로모 화산으로 모여들고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꼭 보아야 하는 활화산, 브로모”
브로모 화산은 활화산이다. 지금도 화구에서 유황 냄새를 피우며 연기가 솟구치고 있다. 갑자기 화산이 폭발하면 연기와 재와 붉은 용암이 솟구칠 수도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 스릴을 느끼고 인도네시아에서 ‘꼭 보아야’ 하는 명소로 브로모 화산을 손꼽는다.
인도네시아는 세계에서 화산이 가장 많은 나라 중 하나로 ‘불의 나라’이며. 인도네시아인들은 아직까지도 살아 있는 브로모 화산에 ‘불의 신’이 살고 있다고 믿는다.
브로모 화산은 거대한 떵거르 화구 안에 있는 산이다. 떵거르 화구는 지름이 10km나 되는데 주변은 가파른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 화구 바닥에서 불쑥 솟구친 산이 브로모 화산이다.
“다른 행성에 온 듯한 느낌을 주는 브로모 화산의 일출”
서서히 해가 솟구치면서 하늘을 붉은색과 오렌지색으로 물들어 가고, 그 빛속에서 브로모 화산쪽의 산들이 모습들이 드러난다. 산들은 모두 용암 흘러내린 자국으로 인해 주름들이 잡혀 있어 더 신비롭다 가장 앞쪽에 있는 정면의 예쁜 휴화산은 바톡산(2,440m)이고 근처에 꾸르시산(2,581m) 있고 뒤쪽에 우뚝 솟은 스메루산(3,676m)이 보인다. 약간 왼쪽에서 연기를 내뿜고 있는 활화산이 브로모산(2.329m)다. 분화구 주변을 둘러싼 구름 속에서 쉴 새 없이 연기를 내뿜는 브로모 화산은 살아서 씩씩거리며 숨을 쉬는 것만 같다.
일출을 감상한 후, 다시 지프차를 타고 브로모 화산으로 이동한다. 넓은 평원에 지프차들이 서고 사람들은 내려서 걷거나 말을 탄다. 올라갈수록 화산재가 쌓여 있어서 걷기가 힘들다. 사람들이 말을 많이 타는 이유가 있다. 걷기도 힘들지만 새벽부터 일어나 피곤하기 때문이다.
산 정상에 거의 다 와서 말에서 내린 사람들은 계단을 걸어 분화구까지 올라가야 한다. 유황 냄새는 나고 해발 2,329m이다 보니 고산증에 약한 사람들은 힘들어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어코 올라간다. 분화구 안에서 부글부글 끓으며 연기가 솟구치는 모습을 보면 지구가 살아있음을 느낀다. 신비롭고 무섭기조차도 하다. 어떤 날은 연기가 많이 나고 어떤 날은 적게 나는데 그것을 인간이 어떻게 알랴?
“브로모 화산의 슬픈 전설”
브로모 화산에 대한 전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분화구 앞에서 쉽게 발길을 돌리지 못한다.
옛날 옛적에 이 근처 왕국을 다스리던 왕과 왕비는 자식이 없었다.그들은 자식을 갖게 해달라고 신들에게 간곡히 기도를 드렸다. 이에 감동한 신들은 한 가지 조건을 내걸고 그들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했다. 그 조건은 많은 자식을 낳게 해주지만 그중 막내를 제물로 바치라는 것. 왕과 왕비는 약속을 했고 그후 많은 자식들을 얻었다. 하지만 어느 부모가 막내아들을 희생시키고 싶겠는가? 그들은 차일피일 뒤로 미루었다. 이에 화가 난 신들은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온 마을에 재앙을 내리겠다고 경고했고 이를 알게 된 막내아들 케수마(Kesuma)는 스스로 분화구로 뛰어들었다. 이에 신들은 노여움을 풀었다. 이후 신들의 나라로 옮겨져 불의 신이 된 케수마는 마을을 보호하고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주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마을 주민들은 그들의 달력으로 마지막 달 보름에 쌀과 과일, 야채, 꽃, 가축 등을 브로모 산의 신에게 바치는 의식인 '야드냐 까사다'(Yadnya Kasada) 의식을 거행한다.
“독특한 브로모 화산의 축제”
2022년 6월 16일에서 6월 18일까지 이 축제가 열렸다. 원래 11월 초에 열리는 의식인데 COVID-19 전염병으로 인해 2020년, 2021년 열리지 않다가 2022년에는 임시로 이때 열린 것이다. 이것을 거행하는 사람들은 힌두교를 믿는 뗑게르(Tengger)족인데 인도네시아인은 전체적으로 이슬람교를 믿지만, 발리섬 주민은 힌두교를 믿고, 근처에 있는 자바섬의 브로모 화산 주변에도 힌두교 신자들이 살고 있다. 이들 수천 명이 꽃과 닭, 염소 등의 제물을 갖고 브로모 화산을 올라가 브로모 화산 분화구에 제물을 던지며 신과 조상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자신들의 행복을 빈다. 이것을 보러 매년 전 세계에서 관광객들이 방문한다.
재미있는 것은 이들이 재물을 던질 때 잠자리채를 들고 분화구 경사면에 서서 날아오는 제물을 낚아채는 다른 부족 사람들이 있다는 것. 이것은 매우 불경한 짓 아닌가? 그런데도 뗑게르족은 자신들은 이미 재물을 던지면서 기도했기에 다른 부족의 이런 행동을 막지 않는다. 신에게 기도하고 제물을 바치면서도 인간 사이의 조화로운 관계를 중시하는 뗑게르족의 관용과 지혜를 엿볼 수가 있다.
자연재해가 많은 곳일수록 전설과 신화가 많다. 인도네시아는 지진, 쓰나미등 자연재해가 많기에 이런 신화와 관습이 많이 남아 있다. 알면 알수록 인도네시아가 문화적으로 흥미진진해지는 이유다.
“불의 신이 살고 있는 브로모 화산”
분화구를 보다 산등성이에 서서 뒤를 돌아보면 평원에 멀리 세워 놓은 지프차들이 아득하게 보인다. 문득, 새벽부터 일어나 먼 길을 달려오던 시간이 꿈처럼 여겨진다. 다시 지프차를 타고 숙소로 돌아와 이침 식사를 하고 나면, 이번에는 화산에 갔다 온 사실이 꿈처럼 여겨진다.
새벽에 달렸던 어둠 속의 시간, 산 전망대에서 어슴푸레 드러나던 화산의 모습들, 그 주변에 깔린 하얀 구름, 세상의 끝, 다른 행성에 온 것 같은 분위기, 분화구 속에서 솟구치던 하얀 연기에 대한 추억 그리고 전설을 떠올리면 문득, 브로모 화산에 ‘불의 신’이 살고 있음을 믿고 싶어진다.
어디 불의 신만 있으랴. 이곳에 오면 어둠의 신, 들판의 신, 하늘의 신, 태양의 신들이 모두 살아서 꿈틀거리고 있는 것만 같다. 대자연 앞에서 겸허해지고, 한 끼의 식사와 한잔의 커피에 감사하고 싶어지는 순간을 맞게 된다. 인도네시아 여행의 매력이다. 일생에 두 번 오기 힘들지만 한 번은 꼭 와볼만한 곳이 인도네시아의 브로모 화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