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의 심장, 붉은 광장과 레닌의 집
모스크바의 상징이자 심장은 붉은 광장이다. 붉은 광장은 크렘린궁 앞의 광장으로 크렘린 성벽, 굼 백화점, 역사 박물관, 성바실리 사원 등에 둘러싸인 폭 130m, 길이 695m의 광장이다. 얼핏 들으면 공산 혁명 과정에서 흘린 ‘피’가 연상되고 과거 정치 행사를 할 때 공산당 지도자들이 나타나던 곳이라 무시무시한 느낌도 들지만 주변 건물이 아름다워서 포근하게 느껴지는 곳이다. ‘붉은’이란 러시아어는 ‘아름다운’이란 뜻도 있으니 ‘붉은 광장’은 ‘아름다운 광장’이란 의미도 갖고 있다.
“러시아의 심장, 붉은 광장”
모스크바는 자본주의의 물결에 휩싸여 모든 게 빠르다. 행인들의 발걸음이 빠르며 지하철 플랫폼은 한국보다 두 배가 깊고 에스컬레이터의 속도는 두 배나 빠르다. 그 빠름의 물결을 타고 모스크바는 상품광고로 뒤덮여 있다. 이런 와중에 여행자들의 눈길을 끄는 가장 러시아스러운 곳은 붉은 광장이다. ‘크라스나야’라는 러시아말은 붉다는 뜻도 있지만 어원으로 보면 아름답다는 뜻이다. 붉은 광장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단연코 양파처럼 올라간 돔과 아름다운 색깔이 조화를 이룬 성 바실리 사원이다.
1562년 이 사원을 만든 사람은 모스크바 공국의 이반 4세였다. 그 당시 덕이 높은 러시아 정교회의 성인 성 바실리를 기념하기 위해 만들었는데, 이반 4세는 용감한 차르였지만 무서운 사람이었다. 그의 친위대 ‘오프리치니나’는 국가의 반역자들을 모두 물어뜯어 쓸어버리겠다는 의미로 검은 옷을 입고, 말의 안장에는 개의 머리와 빗자루를 달고 다녔다고 한다. 그 때문에 이반 4세는 이반 공포제라 불리웠고 성 바실리 사원이 만들어진 후, 다시는 이렇게 아름다운 사원을 짓지 못하도록 건축가들의 눈을 뽑아 버렸다는 얘기가 전해 내려온다.
“공산주의의 상징이었던 크렘린 궁”
붉은 광장에는 크렘린 궁이 있다. 한때 음모와 음흉의 대명사로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를 정도였는데 지금은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 관광지다. 크렘린이란 원래 목조로 만들어졌으나 1,363년에 하얀 돌로 건설되었다. 그후 15세기에 이르러 수많은 교회와 성벽이 건설되었고 17세기에 이르러 차르가 이곳에 머물게 된다. 1872년 나풀레옹 침입 때 화재로 소실되었고 그후 개축한 모습이 현재의 크렘린이다.
크렘린궁 안에는 한 번도 발사된 적이 없는 세계 최대인 차르의 대포가 있고, 한 번도 울려본 적이 없다는 무게 202톤의 깨진 종이 있다. 또한 수많은 정교회 사원과 진기한 무기 및 왕관 보석들이 전시된 무기고 박물관 등이 있다.
이곳에는 구한말 우리의 흔적도 서려 있다. 1896년, 우스펜스키 사원에서 차르 니콜라이 2세가 대관식을 했을 때 대한제국의 민영환, 윤치호 등의 일행이 이곳에 왔었다. 그러나 이들은 안에 들어가질 않았다. 갓을 벗어야 했지만 그들은 갓을 벗기를 거부하고 밖에서 기다렸다는 것이다. 크렘린궁의 맞은편에 있는 굼백화점에는 1000개 이상의 점포가 들어서 있는데 한때 이곳은 질 나쁜 상품과 긴 줄의 대명사였지만 지금은 러시아 최고의 백화점으로 수입명품들을 팔고 있다.
“레닌이 머물던 집”
붉은 광장을 본 후, 공산주의 국가 소련을 만든 레닌의 흔적을 보고 싶으면 모스크바에서 남동쪽으로 32km 떨어진 곳의 고르키 레닌스키에로 가면 된다. 이곳에서 레닌은 말년을 보내다 1924년 1월 21일 뇌경색으로 죽었다. 혁명이 성공했을 때가 그의 나이 47살이었고 죽었을 때가 54살이니, 그가 혁명의 열매를 맛본 기간은 약 7년 정도였다. 그나마 말년은 병에 시달렸는데 그가 살던 방, 정원 등을 돌아보면 그야말로 인생무상, 정치무상을 느끼게 된다. 고르키 레닌스키는 모스크바에서 지하철 2호선을 타고 남쪽의 도모데도브스카야 역에서 내려 버스를 타면 약 30분 후에 ‘레닌무제이(레닌박물관)’에서 내려 조금 걸어가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