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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랄산맥 동쪽, 시베리아에서 두 번째로 개척된 도시 토볼스크

c.pixabay.com/Alexander Lesnitsky

토볼스크(Tobolsk)는 우랄 산맥 동쪽 즉, 아시아쪽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러시아인 정착지다. 현재 튜멘 주에 속해 있다. 튜멘은 우랄 산맥 동쪽, 즉 시베리아에서 가장 먼저 개척된 도시 인데 토볼스크는 튜멘의 북동쪽으로 247km 떨어져 있다. 튜멘(Tyumen)은 모스크바로부터 2,133km 떨어져 있으니 모스크바에서 엄청나게 멀리 떨어져 있는 셈이다. 이곳에는 시베리아 유일의 석조성인 토볼스크 크렘린 (Tobolsk Kremlin)이 있어서 눈길을 끈다.

“타타르인들의 요새 위에 세워진 토볼스크”
러시아는 모피를 구하기 위해서 시베리아를 개척했는데 그들은 중부 시베리아를 거쳐 극동 지방의 블라디보스토크, 하바로스크까지 왔었다. 그 과정에서 시베리아의 바이칼 호수 인근에 ‘시베리아의 파리’라고 불리는 이르쿠츠크를 개발했다. 그런데 서부 시베리아, 즉 우랄산맥 바로 동쪽에 있는 튜멘((Tyumen)은 첫 번째로 개척된 아시아 쪽의 도시로 유럽 쪽에서 오다 보면 시베리아의 관문이라 할 수 있다.
차르 정부가 타타르인들이 지배하던 시베리아 지역을 개척하면서 가장 먼저 지은 요새가 튜멘(Tyumen) 요새다. 타타르가 이곳을 지배할 때는 투라(Tura)라고 불렀는데 표도르 1세(Feodor I)는 타타인을 몰아내고 1586년 7월에 이곳에 요새를 건설했다. 1년 뒤에는 투멘의 북동쪽으로 247km 떨어진 곳에 타타르인들의 시비르 칸국의 수도 카쉴릭을 공격했으며 그들을 몰아내고 다시 요새를 건설했으니 이곳이 바로 토볼스크(Tobolsk) 요새다. 즉 토볼스크는 타타르인들의 카쉴릭 폐허 위에 지어진 요새 도시다. 토볼스크는 토볼강과 이리시티 강이 만나는 지점에 있어서 물자를 이동하기에 좋은 곳이었다. 초기 시베리아는 철도도 없었고 도로도 없었다. 그때는 강이 가장 좋은 운송 통로였다. 러시아인들이 이곳을 정복한 것은 모피가 주목적이었지만 이들은 종교도 전파했다. 러시아인들은 토볼스크에 러시아 정교회 교회를 세웠다.

“토볼스크의 석조 크렘린”
차르는 17세기 후반에 건설한 토볼스크 요새(Tobolsk Kremlin)를 건설했는데 이를 토볼스크 크렘린이라 부른다. 원래 크렘린의 초기 형태는 목재로 만들었는데 이 크렘린은 시베리아의 유일한 석조 성이며, 토볼스크 크렘린이라 부른다. 성안에 성소피아 대성당과 상인들의 정원, 지역 민속 박물관으로 쓰이는 주교 궁 등이 있다. 1683-1686년에 모스크바의 Veliky Ustyug에서 파견된 석공들이 석조 성 소피아 승천 대성당을 건설했고 18세기 초에 크렘린의 돌담과 탑이 건설되었다. 새하얀 벽에 양파를 머리에 이고 있는 듯한 성 소피아 대성당 옆에는 안뜰로 통하는 ‘성자의 문’이 있다. 이 교회는 단순히 유적지가 아니라 현재도 러시아 정교도들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 곳이다. 크레믈린 성벽길을 따라 산택하다 보면 밑으로 토볼스크 시내 전경이 보인다.

“토블스크의 쇠락과 관광 도시로서의 거듭남”
1708년 표트르 대제는 토볼스크를 시베리아 주도로 선포했다. 그만큼 18세기에 토볼스크는 시베리아에서 중요성을 띤 도시였다. 이곳은 원래 타타르인들의 주거지였기에 토볼스크 시민들 중에는 타타르인들이 많았었다. 토볼스크는 동쪽으로는 중국, 남쪽으로는 부하라와의 무역을 통해 번영을 누렸고 시베리아 최초의 학교, 극장 신문이 이곳에 설립되었다. 스웨덴과의 전쟁(1700~1721)을 치르면서 잡아온 스웨덴 포로들을 1709년에 토볼스크로 이주시켜 건설 노동에 동원했다. 한때 토볼스크에 스웨덴인 인구가 전체 인구의 25%를 차지했을 정도인데 도시 건설에 공을 세운 스웨덴인들은 현지인들 사이에서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그들 중 다수는 1720년대까지 송환되지 않았고 일부는 토볼스크에 영구적으로 정착했다.
이곳은 러시아 죄수들의 유배지이기도 하다. 1825년 데카브리스트 반란 이후 시베리아로 추방된 데카브리스트 중 일부가 토볼스크에 유배당했고 1917년 러시아 혁명 직후에 차르 니콜라이 2세 가족들을 이곳에 유배했다가 다시 예카테린부르크로 이주시킨 후에 처형했다. 한때 번성했던 토볼스크는 러시아의 시베리아 영토가 급속히 팽창하고 토볼스크 인근의 모피 남획으로 인해 야생 동물들이 멸종되면서 중요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1890년대에는 시베리아 철도가 토볼스크를 비껴서 튜멘과 옴스크를 직접 연결하는 가운데 토볼스크는 소도시로 전락했고 지금은 인구 10만 정도의 중소도시로 관광객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