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가장 동쪽 끝인 블라디보스토크와 하바로프스크
과거의 블라디보스토크는 우리에게 멀고 멀었었다. 공산주의 소련이 흥했을 때는 붉은 군대, 소련이 망하던 시절에는 초라한 보따리 장수들, 가난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한국인 관광객들도 많이 가고, 우리와 다른 극동 지방의 자연과 러시아 문화와 음식을 즐길 수 있는 예쁜 도시다. 하바로프스크는 드넓은 숲과 바다같은 아무르강이 돋보이는 강이다. 가물가물한 수평선을 바라보며 산책을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이곳에는 러시아인들도 많이 살지만 예전에는 우리와 같은 몽골계가 살던 영토라 비슷한 문화도 볼 수 있다.
“가장 동쪽에서 러시아인과 러시아 문화를 볼 수 있는 블라디보스토크”
‘극동의 정복자’라는 뜻을 가진 블라디보스토크(Vladivostok)는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러시아인의 도시다. 비행기를 타고 동해를 따라 북상하다 보면 2시간도 안 되어 연해주 땅이 펼쳐진다. 물결처럼 퍼지는 광대한 숲 한가운데 공항이 있고, 그곳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제복을 입은 예쁜 러시아 여인들의 쌀쌀맞은 표정과 금발이다. 그 풍경을 보는 순간 ‘아, 러시아 땅에 왔구나’하는 실감이 든다.
블라디보스토크는 예쁜 도시다. 물론, 조잡한 물건을 파는 허름한 가겟집들도 많고 역 앞의 광장에는 레닌 동상이 여전히 서 있지만, 블라디보스토크는 매우 평화스럽다. 기차역은 동화 속에 나오는 성처럼 예쁘고, 언덕에 올라 내려다보는 쪽빛 바다와 항구들도 평화롭다. 스베틀란스카야 거리에는 제정 러시아 때 세워진 고풍스런 건물들이 늘어서 있고 그 한가운데를 장난감같은 전차와 트롤리버스들이 달린다.
블라디보스토크에는 시베리아 호랑이 박제와 이 근방에 살던 현지인들의 민속적인 유물, 소비에트 시절의 유물들이 전시된 박물관들이 있는데, 가장 눈길을 끄는 곳은 시내 한복판에 있는 혁명전사 광장으로 깃발과 나팔을 든 채 진격하는 역동적인 병사들의 동상이 서 있다.
“블라디보스토크의 아픈 역사”
블라디보스토크는 아픈 역사를 갖고 있다. 19세기말 제정 러시아 때 이곳에 러시아 태평양 해군기지가 생기면서 급속하게 발전했는데, 공산주의 혁명 직후에 미국, 영국, 일본군이 상륙하여 반혁명 러시아 세력인 백군을 지원하면서 혼란에 빠진다.
러시아인들은 늘 이런 침략에 시달렸다. 몽골인들의 침략, 나폴레옹의 침략, 히틀러의 침략...그러나, 어느 나라나 그렇듯 그들 또한 힘을 갖게 되면서 끝없는 팽창 정책을 추구했다. 우리는 그들을 그 시기에 만났었다. 위대한 제정 러시아 건설을 외치던 그들을 구한말 시대에 만났고, 위대한 소비에트 공산혁명을 외치던 그들을 해방 후에 만났었다. 그래서 우리의 뇌리에 각인된 러시아인들의 이미지는 침략적, 팽창적이다. 그러나 알고 보면 그들도 외국에 늘 당하고 있다는 피해 의식에 시달려왔다.
블라디보스토크에는 우리의 흔적도 배어 있다. 항일 독립군들은 볼세비키와 백군들 싸움에서 볼셰비키를 도와 1919년 말 그들의 승리에 일조를 했다. 그후, 블라디보스토크는 우리 독립운동의 거점으로 성장했고 서북 변두리 언덕의 신한촌(新韓村)에서 홍범도 장군을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이 한때 거주했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밀려난 백군, 즉 황실과 귀족들은 중국의 하얼빈으로, 상하이로 도망가게 되고 몰락한 그들의 딸들은 생계를 위해 술집에 드나들기도 했다. 그들이 백군에 속해 있었기에 백계 러시아인이란 용어가 생겨났고 우리들에게도 백계 러시아 여인의 미모가 다소 과장되게 전달되었다. 원래 백러시아란 구소련 해체후 독립한 벨라루스(Belarus)의 전 국가 이름이었고 그들의 흰 피부, 흰 의상, 흰 집으로 인해 그렇게 불리웠다는데 우리는 백러시아와 백계 러시아를 혼동해서 쓰고 있다.
“극동 지방의 최대도시 하바로프스크”
하바로프스크란 이름은 러시아의 탐험가 하바로프의 이름에서 유래했는데 그가 동방의 끝까지 탐험했던 이유는 모피 때문이었다. 9세기말 러시아의 기원이 된 나라 키예프 루시가 일어났으나 13세기초 몽골에게 굴복해 러시아인들은 약 240년간 몽골의 지배를 받았다. 그 치욕스러움을 물리치고 일어난 나라가 모스크바 공국인데 16세기경, 우랄산맥 서쪽에 있던 시비리란 나라로부터 담비 가죽, 다람쥐 가죽 등을 공물로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점점 시비리가 의무를 게을리하자 이 지역을 정벌한다. 이렇게 시작된 시베리아 정복은 17세기초 로마노프 왕조에 와서 더욱 적극성을 띠게 되는데 그 전위대는 사냥꾼과 모피류를 수집하던 상인들과 민병들이었다. 하바로프 역시 기업가적인 야망을 안고 17세기 중반 아무르 강변을 탐사하며 원주민을 점령했다. 이렇게 해서 아무르 강변에 만들어진 도시가 하바로프스크다.
현재 하바로프스크는 극동 지방의 최대도시지만, 첫발을 내딛으며 낡은 아파트, 목조 건물들, 시커먼 연기를 내뿜고 있는 굴뚝 등을 보는 순간, 낙후된 우리의 과거를 떠올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바로프스크는 전원풍의 낭만적인 도시고 23개의 대학들과 수많은 중등 교육기관, 전문기술학교가 있는 교육도시이기도 하다.
“드넓은 아무르강”
이곳의 가장 큰 볼거리는 단연코 아무르강이다. 길이 4,350km로 동북 아시아 최대의 강인 아무르강은 중국측에서는 헤이룽강(흑룡강)이라고 부른다. 아무르강은 바다같은 강이다. 가물가물한 수평선을 바라보며 러시아인들은 산책을 즐기는데 특히 아름답기로 소문난 하바로프스크 여인들이 눈길을 잡아 끈다. 강 근처의 향토박물관에는 아무르 호랑이, 곰, 순록들의 박제와 아궁이, 솥이 걸린 부뚜막, 마루가 있는 집, 나무 탈등 낯익은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다. 원래, 아무르강은 만주족의 무대였고 먼 옛날엔 우리의 무대이기도 했다. 또한, 적군박물관에는 극동지방에서 벌어졌던 일본, 중국, 소련군의 전투 자료가 상세히 전시되어 있다.
“하바로프스크의 중심지”
하바로프스크의 중심지는 레닌광장에서 콤소몰 광장까지 이어지는 아무르스키 거리다. 이곳에는 번듯한 건물들이 많다. 그런데, 문이 엄청 두텁고 창문이 없거나 조그마해서 러시아어를 모르는 이방인은 무슨 건물인지 좀처럼 알 수가 없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대개 백화점이나 상점인데 소련이 망할 때와는 달리 안에는 풍부한 식료품과 상점들이 있어 열기가 후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