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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자랑, 인류의 유산인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주 박물관

러시아의 상트 페테르부르크는 매우 아름다운 도시다. 이 도시에는 러시아가 세계에 자랑하는 에르미타주 박물관이 있다. 에르미타주 박물관에서 발행한 가이드북에 의하면 300여 개의 방에 전시된 소장품은 약 300만 개인데, 작품 한 점당 1분씩만 본다고 해도 잠 안 자고, 쉬지 않고 볼 경우 2,083일이 걸리니 햇수로 계산하면 5년 8개월이다. 이처럼 어마어마한 양의 소장품은 물론, 귀한 보물들이 많고, 박물관 자체가 화려하다.

“러시아가 자랑하는 세계 인류의 유산, 에르미타주(Hermitage) 박물관”
에르미타주는 겨울 궁전을 포함한 총 다섯 개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1층에는 원시, 이집트, 서아시아, 보석, 동유럽, 시베리아, 중앙아시아 등지의 고대 문화가 전시되어 있고, 2층에는 러시아와 서유럽의 문화, 예술품, 3층에는 프랑스 근세 회화와 서유럽, 미국의 회화 그리고 중국, 몽고, 일본, 비잔틴, 중아아시아 문화와 고대 화폐 등이 전시되어 있다.
천천히 돌아보면 시간이 꽤 많이 걸리는 곳이다. 예술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며칠에 걸쳐 보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여행자는 눈요기만 하기에도 벅차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2층의 휘황찬란한 천장의 샹들리에와 금마차다. 표트르 대제가 1717년 파리를 방문했을 때 제작된 마차로 차르의 위세를 알 수 있다. 또한 계속 이어지는 휘황찬란한 유물들 앞에서 감탄을 금할 수가 없다.

“2월 혁명의 현장 궁전 광장”
에르미타주 박물관 근처에 궁전 광장이 있다. 궁전 광장은 나폴레옹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훗날 러시아 혁명의 현장으로 더 알려져 있다. 1917년 2월,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 중이던 러시아는 빈곤에 시달리고 있었다. 전선에서는 병사들이 죽어 나갔고 연료와 식량 부족으로 식료품 가격이 치솟았다. 결국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는 식량 배급제를 실시했는데 2월 23일 습기 찬 영하 20도의 살벌한 추위 속에서 식량을 타려고 몇 시간을 기다리던 군중들은 ‘더 이상 빵이 없다’며 ‘니예트(노)’를 외친 병사의 말에 분노하기 시작했다. 군중들은 ‘빵을 달라’고 외치며 겨울 궁전 앞으로 행진을 한다. 이것이 2월 혁명의 시작이었다. 시위대에 군대와 경찰도 동정적이어서 막을 수도 없었다. 결국 3월 2일, 차르 니콜라이 2세는 물러났고 로마노프 왕조 시대는 끝나게 된다. 그후 케렌스키를 수반으로 하는 임시정부가 탄생했다. 이 2월 혁명에 이어서 그해 10월 레닌과 트로츠키를 중심으로 한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나 러시아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공산화된다.

“예술가의 흔적이 서린 예술의 도시, 상트 페테르크”
상트 페테르크를 세운 사람은 제정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의 4대 차르, 표트르대제였다. 그는 네바강이 흐르고 있는 이곳에 도시를 세우기로 한다. 네바는 핀란드어로 늪이란 뜻인데 그만큼 지리가 좋은 곳이 아니었다. 하지만 표트르 대제는 자신의 꿈을 밀어붙였다. 표트르 대제는 젊은 시절 포병 상등병으로 위장한 채, 서유럽 사절단에 참가해 직접 유럽 문명을 체험하고 돌아와 개혁의 화신이 되었다. 러시아 정교회에서 신성시했던 턱수염을 스스로 깎은 후, 주변의 관리들 턱수염을 직접 면도기로 깎아 주었다. 그의 개혁 의지가 얼마나 철저했던지, 젊은이들에게 손가락으로 코를 후비지 말라는 등등의 교훈서를 발간할 정도였다.
유럽풍의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겠다는 야망에 불타올랐던 그는 온갖 반대를 무릅쓰고 상트 페테르부르크를 건설한 후, 수도를 모스크바에서 이곳으로 옮겼다. 수도를 건설하는 동안 열악한 기후 조건으로 인해, 노동자들 약 3만 명이 죽어서 ‘뼈 위에 세워진 도시’란 불명예스런 별명도 가졌으나 현재는 러시아의 가장 아름다운 도시가 되었다.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중심도로는 약 4km에 달하는 네프스키대로다. 네프스키 대로에는 화려한 쇼핑센터, 백화점, 아름다운 이사크 러시아 정교회 사원들이 들어서 있고 2월 혁명의 현장인 궁전 광장도 이 거리에 있으며 에르미타주 박물관도 있으니 중심 도로라고 할 수 있다.
상트 페테르부르크를 매력적으로 만드는 것은 에르미타주 같은 박물관, 궁전 못지 않게 곳곳에 있는 예술가들의 흔적이다. 러시아 국민들이 가장 사랑하며,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는 싯 귀절로도 우리에게 유명한 시인 퓨슈킨의 집은 운하 옆에 있고 도스토예프스키가 살던 집은 박물관으로 남아 있다. 지하철 센나야 역에는 그의 소설 ‘죄와 벌’의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가 자신의 죄를 속죄하며 대지에 입을 맞춘 센나야 광장이 있고 그곳에서 얼마 안 떨어진 곳에는 그의 하숙집도 있다. 운하 근처 노란색 건물 5층의 어느 방에서 도스토예프스키는 1864년부터 약 3년간 머물며 죄와 벌을 썼다고 한다. 그의 생전의 모습이 그대로 재현된 박물관은 지하철 도스토예프스키역 근처에 있다. 그는 1881년 1월 28일 오후 8시 36분에 이곳에서 숨을 거두었고, 네프스키 대로 끝에 있는 타흐빈 묘지에 묻혔다. 정치범으로 사형직전까지 갔었고 간질병, 도박, 변태성욕 등에 시달리던 도스토예프스키는 이제 묘지에서 차이코프스키, 무소르그스키, 림스키코르사코프 등의 러시아 예술가들과 함께 평화롭게 쉬고 있다.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들은 눈에 보이는 것 못지 않게 사라져간 것들이다. 상트 페테르부르크 역시 사라져 간 러시아 예술가들의 흔적에 의해서 아름다운 도시가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