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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한국적이고 가장 아름다운 창덕궁

c.pixabay.com/users/slpix

창덕궁은 경복궁에 비해 포근한 분위기다. 경복궁은 중국의 자금성처럼 대칭형으로 만들어졌으며 존엄성과 권위를 드러내도록 건축되었다. 그러나 창덕궁은 고려시대 궁궐의 전통을 이어받아 북악산의 줄기인 응봉의 산 모양에 맞추어 적절하게 궁궐을 만들어서 아늑한 분위기다. 거기에 아름다운 숲이 들어선 후원이 함께 해서 역대 조선왕들은 경복궁보다 창덕궁을 더 좋아했다. 창덕궁은 1997년에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조선의 왕들이 경복궁보다 더 오랜 세월을 머물렀던 아름다운 창덕궁”
창덕궁(昌德宮)은 경복궁의 동쪽에 있는 조선 시대 궁궐로 동쪽으로 창경궁과 이어져 있다. 조선 시대에는 창경궁과 더불어 동궐(東闕)이라 불렀었다. 창덕궁은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경복궁과 달리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는 고궁이며 특히 창덕궁 후원은 한국의 유일한 궁궐후원으로 비원(Secret Garden)이라고도 부른다. 아무나 들어가지 못하는 왕실의 정원이었다.
창덕궁은 1868년 정궁인 경복궁이 다시 지어질 때까지 임금이 거주하며 나라를 다스린 곳이었다. 그러니까 1392년부터 1592년까지 200년간 경복궁이 정궁이었다면 창덕궁은 임진왜란 이후 약 270년 동안 정궁의 역할을 했다. 사실 경복궁은 조선이 시작할 무렵 왕자들의 난으로 피비린내 나는 곳이었고 임진왜란 때 왜군에 의해 초토화되었기에 그후 조선의 국왕들은 경복궁으로 갈 마음도 없었고, 다시 재건할 능력도 없었다. 대원군이 왕실의 권위를 높이고자 다시 경복궁을 재건했지만 엄청난 재정적 무리를 감수해야 했다.
일제강점기 때 일제는 의도적으로 경복궁에 중앙청을 지어서 경복궁을 훼손했고, 창덕궁도 훼손했으며 창덕궁과 이어진 왕실의 별궁인 아름다운 창경궁을 동물원과 식물원으로 만들어버리면서 창경원으로 격하시켰다. 지금은 복원되어 창경궁이라 불리지만 1960년대, 1970년대를 기억하는 이들에게 창경원은 동물원이었다. 지금은 창덕궁과 창경궁이 이어져서 계속 이어서 볼 수 있다. (입장료는 따로 내야 한다.)

“창덕궁의 역사”
창덕궁은 태종 5년(1405년) 경복궁에 이어 두 번째로 세워진 조선의 궁궐이다. 태조 이성계는 1392년에 개성의 고려 궁궐 수창궁에서 왕위에 오른 후, 재위 3년째인 1394년에 수도를 한양으로 옮기고 경복궁에 기거했다. 그러나 왕위 계승권을 둘러싼 왕자의 난 때 피비린내 나는 살육을 경험했었다. 이방원이 옹립한 정종은 한양이 싫다며 도읍지를 다시 개경으로 옮겼다. 그 뒤 정종에게서 양위 받은 태종은 재위 5년(1405)년에 한양으로 환도했지만 그는 자신이 주도한 왕자의 난의 기억과 함께 자신의 정적 정도전이 설계한 경복궁이 싫었다. 그는 경복궁 동쪽에 새로운 궁궐을 지은 후 창덕궁이라 이름 었다. 후에 태조 이성계도 이 궁에 와서 죽었다. 태종은 계속 건물을 확장해서 점차 궁궐의 모습을 갖추었다. 그후에도 조선의 왕들은 냉기가 도는 경복궁보다 따스한 창덕궁을 더 선호했다고 한다. 특히 임진왜란으로 경복궁이 소실되자 이제 창덕궁은 조선의 정궁이 되었다.
인조반정으로 창덕궁의 대부분이 소실되자 1647년에 재건하였고 후원에 여러 정자와 연못을 조성하였다. 조선 말기에는 서구의 문물을 도입하면서 창덕궁에도 서양식의 전등, 차고가 설치되기도 했다. 고종 때는 경복궁이 다시 정궁의 역할을 했으나 1907년 순종이 즉위한 후에는 다시 창덕궁이 황궁이 되었다. 일제에 의해 훼손되고 방치된 창덕궁과 창경궁은 1990년대 이후 복원작업이 진행되었고 1997년에 창덕궁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자연스런 창덕궁의 형태”
북쪽으로 산을 등지고 14만 5천여 평의 산자락에 자리 잡은 칭덕궁은 크게 임금이 사신을 접견하고 의식을 치르는 인정전과 일상적인 업무를 보는 선정전을 중심으로 한 통치 업무 지역이 있다. 임금이 거처하면서 편안하게 집무를 보는 희정당과 그 뒤쪽으로는 임금과 왕비의 침전인 대조전이 있다. 이곳은 임금과 왕비의 사적 생활 공간으로서 마당과 이를 둘러싸고 있는 집들이 중첩되어 있어 궁궐에서 가장 접근하기 힘든 곳, 즉 구중궁궐이었다. 창덕궁은 앞에는 공적인 공간을 두고 뒤쪽에는 사적인 공간을 두는 전조후침(前朝後寢)의 원칙에 따랐다. 임금과 왕비의 침전이 있는 곳은 사적인 비밀스러운 공간으로 분위기가 아늑하다.

“가장 한국적이고 가장 아름다운 창덕궁”
서울에는 아름다운 궁궐이 많다. 경복궁, 창덕궁, 덕수궁 등 각 궁궐은 독특한 형태와 분위기를 갖고 있다. 경복궁은 반듯하고 근엄한 궁궐이고, 덕수궁에는 근대화되는 과정에서 새로운 현대적인 건물들이 함께 있고 또 아름다운 연못이 있다. 그 중에서 창덕궁이 제일 아름다운 곳으로 창경궁과 함께 자연스러운 궁궐, 아름다운 숲, 후원(비원)이 어우러진 가장 한국적이고 세계에 자랑할만한 궁궐이다.
장엄한 것으로 말하자면 중국의 자금성을 따라갈 수는 없다. 그러나 자연스런 아름다움, 숲, 산책로가 있는 포근하고 아늑한 점에 있어서는 창덕궁을 따라올 궁궐이 별로 없다. 따스한 봄날, 혹은 단풍지는 가을날 창덕궁과 비원을 보고 창경궁을 걸으면 정말 아름답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비원은 들어가는 시간이 정해져 있고 가이드가 함께 가므로 시간을 잘 알아보고 비원, 창덕궁, 창경궁 순서대로 보거나 반대로 창경궁, 창덕궁, 비원을 구경하면 된다. 창경궁, 창덕궁 경계 구간에서 각 티켓은 따로 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