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마음을 정화하는 구인사 템플 스테이
템플 스테이(Temple stay)는 사찰에서 일반인들이 일정 기간 머물며 참선, 명상 등 한국불교의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게 하는 문화 체험 프로그램이다. 이런 프로그램이 등장한 것은 2002년 한일 월드컵 대회 무렵이다. 모자라는 숙박시설을 충당하면서 외국인에게 한국의 문화를 소개하려는 목적으로 정부와 대한불교조계종이 합심하여 추진한 것이 초기의 모습이었는데 지금은 한국의 불교 전통문화를 체험하는 매력적인 프로그램이 되었다.
“몸과 마음을 정화하고 불교 문화를 접할 수 있는 템플 스테이(Temple stay)”
템플 스테이에는 체험형, 휴식형, 당일형 프로그램이 있다. 체험형은 새벽 4시에 기상해서 4시 반에 예불을 드리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그 후 공양, 산책, 스님과 차를 마시며 나누는 차담, 108 염주 꿰기 등을 통해 불교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 휴식형은 최소한의 활동(공양, 예불)에만 참가하고 사찰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며 휴식한다. 당일형은 일부 사찰에서만 운영하는데 2~3시간 정도 사찰에서 준비한 특별 프로그램(사찰음식 만들기, 염주 만들기, 차담 등)이다. 2022년 기준으로 전국 140여 개 사찰에서 계절과 사찰 특성에 따라 다양한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템플 스테이 할 때 필요한 개인 준비물로는 세면도구, 수건, 수련복 안에 입을 면 티셔츠, 취침 시 입을 옷, 헤어드라이기, 충전기 등이다. 수련복은 사찰에서 제공한다. 그 외의 숙박에 필요한 것들은 사찰에 준비되어 있으니 미리 알아보면 된다.
“사찰 내에서의 예절”
불자가 아니더라도 참가가 가능하다. 복장은 지나치게 화려한 옷을 입거나 짧은 옷은 삼가고, 커플끼리의 애정 표현도 삼가야 한다. 당연히 불교 교리에 어긋나는 음주, 흡연을 피하고 고기도 먹으면 안 된다. 지나친 휴대폰 사용도 금지다. 스님을 만났을 때는 공손하게 인사하고 신발을 가지런히 놓아두어야 한다. 이런 예절 교육은 가자마자 받게 된다.
“대한불교 천태종의 총본산 사찰, 구인사”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불교 종단은 조계종이다. 조계종에 속한 수많은 사찰에서 템플 스테이를 하고 잘 알려져 있는데 여기서는 천태종 구인사의 템플 스테이를 소개한다. 구인사는 한국 천태종의 총 본산으로서 템플 스테이 프로그램이 활발해서 많은 이들이 찾고 있으며 외국인들도 종종 참가한다. 구인사의 홍보 및 소개문에 의하면 이렇다.
1945년 천태종 중창조인 상월원각대조사가 '억조창생 구제중생 구인사'로 명명하고 칡덩굴로 얽어 만든 삼간 초암에서 뼈를 깎는 수행정진으로 통해 대도를 이루어 500여년간 은몰 되었던 천태종을 이 땅에 다시 중창시켰다. 법화경을 의지하는 천태교의만이 말법시대를 제도할 유일한 길임을 천명하고 1966년 천태종 중흥을 선포하면서 종단으로 등록했다. 천태종은 애국불교ㆍ대중불교ㆍ생활불교를 3대 지표로 하여 새 불교운동을 전개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위에서 밝힌 것처럼 구인사는 대한불교 천태종의 총본산 사찰로서 전국에 140개나 되는 절을 관장하고 있으며 1945년에 건립되었다. 소백산 국망봉을 중심으로 장엄하게 늘어선 봉우리 가운데 하나인 연화봉 아래에 자리 잡고있디. 구인사는 현대식 건물의 대가람 (총건축면적 15.014㎡)으로 절 안에는 5층 대법당을 비롯하여 삼보당, 설선당, 총무원, 인광당, 장문실, 향적당, 도향당 등 50여 동의 건물들이 경내를 꽉 메우고 있으며 만여 명이 취사할 수 있는 현대식 시설도 갖추어져 있다.
구인사에서 눈길을 특히 끄는 곳이 두 군데다. 국내 최대 규모의 대법당과 법어비. 대법당은1980년 4월 29일 준공된 5층 건물로 국내 최대 규모의 법당이다. 이 법당은 상월원각 대조사가 처음 구인사를 창건하고 수행하던 그 자리에 세워졌다. 또 상월원각 대조사 법어비는 상월원각 대조사가 일생 동안 신도들에게 가르친 모든 법문을 총집약시켜 간략하고 명료하게 요약하여 새겨 놓은 비석이다. 법어 안에는 부처님 팔만대장경의 모든 진리가 다 포함되어 있으며 넓고 미묘한 불법의 이치를 담고 있다고 한다.
“구인사 템플 스테이의 과정”
1박 2일 템플 스테이는 결코 빡빡한 일정이 아니다. 참여자들에게 과도한 불교 수행을 강요하지 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불교의 세계, 불교문화와 분위기를 접하는 정도다. 그 과정을 통해서 스스로를 돌아보고 마음 편한 시간을 가질 수 있게 한다.
우선 주차장 근처 매점에서 승합차를 타고 산속 깊은 절까지 올라간다. 사찰에 가서 템플 스테이 할 동안의 규칙과 예절을 동영상을 통해 배운다. 그리고 108개의 염주알을 꿰맨다. 그것을 마치고 나면 천왕문을 통과해서 숙소로 이동하는데 5층짜리 우뚝 솟은 독특한 5층짜리 대법당이 나온다. 그 건물 안에 템플 스테이 숙소가 있다. 모든 것이 깔끔하고 쾌적하지만 인터넷이 안된다. 잠시 인터넷을 끊고 휴식할 수 있는 장소다. 1인 2실로서 룸메이트와 함께 쓴다.
휴식형 1박 2일은 특별한 프로그램이 없다. 안내자가 있는데 안내자를 따라서 묵언 수행을 하며 구인사 경내를 한 바퀴 돈다. 그후 자유시간 속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소백산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이곳에는 가파른 언덕길에 여러 건물들이 있어서 그곳을 왔다 갔다 하는 것만 해도 가벼운 등산이 된다. 밤에는 하늘의 별을 바라볼 수 있고 다음날 새벽 예불에 참가할 수도 있지만 자유에 맡긴다. 어떤 이들은 일출을 보기도 한다. 체험형 1박 2일은 설법 듣는 시간, 108배 수행, 적멸궁 포행, 정진 등 프로그램이 있지만 힘들지는 않다. 불교문화와 수행자들의 생활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는 시간이다.
“조계종과 천태종의 발달사”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불교의 종파는 조계종(曹溪宗)이다. ’조계‘라는 말은 중국 선종 6조인 혜능(慧能)의 별호에서 유래하였다. 조계종의 정체성은 비구승단, 비구승 수행의 중심인 선(간화선)에 있다. 화두를 들고 참선을 하는 것을 말한다. 즉 스승이 내려준 어떤 주제를 끝없이 살피고, 참선하는 가운데 어느 순간 확연히 불법의 이치, 세상의 이치를 깨쳐서 깨달음에 이르는 방법을 말한다. 이것은 중국의 송대의 임제종의 전통에서 나온 방법으로 고려 시대에 보조국사 지눌에 의해서 한반도에 뿌리내린 방법이다. 그래서 현재 한국의 불교, 특히 조계종에서는 간화선을 중심으로 한 참선이 주요 수행 방법이다.
한국에서 조계종이라는 이름이 등장한 것은 고려 때다. 그 유래는 신라 말기 때부터 내려온 9산 선문(九山禪門)을 고려때 대각국사 의천(義天: 1055-1101)이 통합하여 천태종을 만들고, 그 종세(宗勢)가 널리 확장해 나가자, 이에 당시의 선종(禪宗) 여러 분파들이 자극을 받아 합쳐져서 성립된 것이 조계종이다. 즉 교종(경전을 중심에 두는 것)과 선종(참선을 중심에 두는 것)이 신라말부터 대립되자 대각국사 의천이 그것들을 통합하여 법화경을 중심으로 하는 천태종을 만들자, 그후 보조국사 지눌이 선종을 통합하여 조계종을 만든 것이다.
그러나 고려 중기부터 조선 초기까지는 천태종이 더 영향력을 발휘했었다. 그후 보조국사 지눌(知訥: 1158-1210), 백운(白雲), 태고국사 보우(普愚: 1301-1382)가 조계종의 종풍(宗風)을 크게 떨쳤다. 대한 불교 조계종에서는 보조국사 지눌을 조계종의 중천조(中闡祖: 분명하게 밝힌 조사)로 여기고, 태고국사 보우를 중흥조(中興祖: 중흥시킨 조사)로 여기고 있다.
천태종은 고려시대 중기에서 조선 초기에 걸쳐 있었던 불교의 한 종파다. 천태종은 원래 중국불교 13종 중 가장 대표적인 종파의 하나로, 수나라의 지의(智顗, 538-597)가 『법화경(法華經)』을 중심으로 천태교학(天台敎學)을 완성시킴으로써 창종되었다. 천태종이라는 명칭은 지자대사가 천태산에 머물면서 이 교학을 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그는 천태종의 종조(宗祖)를 인도의 용수(龍樹)로 삼았고, 중국 제1조(祖)는 북제(北齊)의 혜문(慧文)을, 제2조는 그의 스승 혜사(慧思)로 삼았으며, 그 자신은 제3조가 되었다.
중국의 천태교학이 우리나라에 전하여진 것은 삼국시대부터였다. 백제의 현광(玄光)은 중국으로 건너가서 천태 제2조인 혜사의 지도를 받아 법화삼매(法華三昧)를 증득(證得)한 후, 고향인 웅주옹산(翁山)에서 『법화경』의 진리를 전파했다. 신라의 연광(緣光)도 수나라로 들어가서 지의의 지도를 받아 큰 깨달음을 얻었으며 신라로 돌아와 천태교학과 『법화경』의 진리를 전했다. 그후에도 중국에 가서 천태종을 체험하고 온 이들은 신라를 거쳐 고려 시절에도 있었는데 그 전통을 이어받아 고려의 대각국사가 천태종을 창종한 것이다.
대각국사는 본래 화엄종(華嚴宗)의 승려였으나 송나라에 들어가 당시 중국의 모든 교파와 학종(學宗)을 두루 살피고 섭렵하면서 천태교학에 몰두한 후, 귀국한 지 12년 뒤인 1097년에 천태종을 창종했다. 대각국사는 선교(禪敎)의 대립을 융화하고 통화종단(統和宗團)을 구현하고자 『법화경』의 회삼귀일사상(會三歸一思想)에 근거한 교관겸수(敎觀兼修)의 사상을 높이 제창했다. 그 시절에 고려에서는 교종과 선종이 크게 대립했었다. 고려시대 초기에는 참선 수행을 중시하는 선종이 세력을 떨쳤으나 차차 그에 맞서 교리를 연구하는 것에 중점을 둔 화엄종, 법상종을 등이 세력을 얻으며 서로 대립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의천은 이런 상황에 대해서 개탄하다가 이것을 합친 천태종을 만든 것이다. 그는 법화경의 ’회삼귀일‘을 내세우며 화엄종과 천태종이 우주와 개인을 따로 보지 않는다 주장하고 여기에 선 사상을 포함하여 하나로 통합하고 교관겸수(敎觀兼修)를 내세웠다. 즉 교리를 배우고, 이치를 보는 참선을 함께 수행하는 것을 내세우면서 선교 대립을 하나로 포용하려고 했다. 교만 닦고 선을 배척해서도 안 되고 선을 수행하면서 교를 배척해도 안 된다는 것을 주장했다.
이런 선교 통합 사상은 천태종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것에 자극받아서 선종에 속해 있던 여러 분파들이 합쳐지고 보조국사 지눌(知訥: 1158-1210) 정혜쌍수(定慧雙修)를 내세우며 조계종을 만들었다. 그 후 고려 중기부터는 천태종의 교관겸수(敎觀兼修). 조계종의 정혜쌍수(定慧雙修)가 한국불교의 전통이 되었는데 이들 모두 교와 선, 즉 교리의 배움과 선 수행을 함께 추구했다.
조선초기에는 천태종이 태조의 지원하에 크게 위세를 떨쳤었다. 그러다 15세기 초에 두 종파로 분열이 되었다가 천태종, 조계종, 총남종(摠南宗)은 선종이라는 이름으로 합쳐진다. 그후 유교 국가인 조선의 숭유억불 정책에 의해 불교는 내리막길을 걸었고 근대에 들어 조계종을 중심으로 불교는 다시 부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