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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전쟁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만든 ‘드럭겔 종’

c.unsplash.com/Ugyen Tenzin

드럭(Druk)은 용을 의미하며 곧 부탄과 부탄 사람들을 의미하고 겔(Gyel)은 승리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불교 사원과 요새를 합한 이 ‘드럭겔 종(Drukgyel Dzong)’은 ‘부탄의 승리’란 뜻이다. 1644년 2차 티베트 전쟁과 1648년 3차 티베트 전쟁에서 대승을 거둔 기념으로 1649년에 만들어졌다. 특히 제3차 티베트 침입 때는 가짜 입구를 만들어 티베트군을 유인하여 전멸시켰다고 한다.

- 부탄 여행은 단체보다 1인, 2인, 3인 등 테일러 메이드 여행 지역으로 드룩패스 트레킹 포함 여행 또는 트레킹 불포함 여행이 가능합니다. 이 여행 지역은 트레킹 불포함시 방문하는 여행지 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신발끈에 문의 부탁 드립니다.

c.unsplash.com/Soonam Wooeser

“부탄과 티베트의 처절한 종파 싸움”
왜 티베트와 부탄은 같은 종교 불교, 특히 같은 티베트 불교를 믿으면서도 왜 이렇게 처절하게 싸웠을까? 살생을 금지하는 불교인데도 왜 그랬을까? 여기에 종파 싸움이 있었다.
험준한 산악과 거친 기후에서 살아가던 티베트인들은 토속종교인 ‘본교’를 믿고 있었다. 주술신앙인데 7세기 무렵 송첸캄포(569-650)에 왕은 불교를 받아들인다. 그는 인도에 신하를 파견하여 불교를 수입했고, 그후 티송 데첸왕(755-781)은 불교를 국교로 정하면서 많은 인도 승려들을 티베트로 초빙했다. 이들 중에 밀교에 능한 파드마 삼바바와 샨타락시타라는 인물이 있었다. 파드마 삼바바가 창시한 티베트 불교 종파를 ‘닝마파’라고 부르는데 ‘오래된 파’를 의미한다. 그후 티베트 불교는 여러 종파로 갈라진다.

“티베트 불교의 다양한 종파들”
파드마 삼바바는 8세기 중엽에 부탄에도 불교를 전해주었는데 부탄에서도 초기에는 파드마 삼바바의 ‘닝마파’가 전파되지만 그 시절에 독립된 국가가 아니었던 부탄은 티베트 불교의 종파 싸움에 말려든다. 티베트에서 ‘드럭파-각규파(일명 뇌룡파)’가 등장하는데 이 종파가 훗날 부탄의 국교가 된다. 뇌룡파는 11세기 초 티베트 중부의 각규파 사원인 ‘랄룽사원’에서 창파 갸레이 예셰 도르지(1161~1211)에 의해 설립되었다. 그들은 스스로를 천둥칠 때 승천하는 용의 자손이라는 뜻으로 뇌룡파라고 이름지었다고 한다.
그 전부터 티베트는 다양한 종파가 생겨나면서 세력 간 다툼이 벌어졌었다. 샤카파는 계율을 강조하고, 각규파는 밀교의 비법을 은밀히 전수하는 것을 중요시했는데 14세기에 샤카파, 각규파의 지도자들이 타락하면서 개혁 운동이 일어난다. 이 개혁을 주도한 파가 겔룩파다. 겔룩파는 계율을 중시하며 학문적인 연구를 중요시했다. 겔룩파는 노란색 모자를 쓰고 있어서 황모파라고도 하며 현재 티베트 불교의 최대 종파다. 현재 세계적으로 유명한 달라이라마 14대도 겔룩파다.

“부탄으로 와서 그들만의 나라를 만든 뇌룡파”
겔룩파의 성장 과정에서 박해를 받던 ‘드럭- 각규파’ 즉 뇌룡파는 부탄으로 본거지를 옮기고, 13세기에 티베트의 파죠 드럭공 싱포 스님이 부탄 지역으로 건너온다. 그들은 기존에 부탄에 남아 있던 닝마파를 누르고 부탄 불교를 뇌룡파로 통일한다. 부탄에서는 뇌룡파의 지도하에 13세기에서 16세기까지 평화로운 시기를 보낸다.
그러다 1616년 뇌룡파(드럭파-각규파)의 지도자 샤브드룽 나왕 남걀(Shabdrung Ngawang Namgyal)이 티베트에서 탄압받다가 부탄으로 건너온다. 그는 부탄에서 뇌룡파를 이끌며 티베트의 겔룩파와 전쟁을 벌여 부탄의 독립을 쟁취했다. 이때부터 부탄이 역사 속에 등장한다. 그는 부탄인들의 종교적, 민족적 정체성을 내세우면서 부탄이라는 나라를 건국했다.1600년대의 티베트와의 전쟁은 이런 역사적, 종교적 배경을 갖고 있다.
티베트에 달라이라마가 있다면 부탄에는 샤브드룽 나왕 남걀이 있는데, 그는 모든 부탄인들의 정신적인 지주다. 그 배경에는 10여 년에 걸친 티베트 겔룩파와의 끝없는 항전의 역사가 있다. 샤브드룽 이후 뇌룡파는 현재까지도 부탄의 정체성을 지키는 국교로 남아 있다.

“부탄이 자신들의 종교와 정체성을 강조하는 이유”
이런 역사가 있기에 부탄인들은 그토록 민족 정체성, 문화, 종교를 강조하는 것이다. 티베트와 차별화된 부탄의 독특한 종교, 민족성, 문화를 내세우지 않으면 부탄은 그저 티베트 불교의 일파, 티베트인과 티베트 역사의 일부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또한 부탄은 다수가 쓰는 종카어가 공용어지만 많은 부족의 말이 서로 다르다고 한다. 그래서 영어도 공용어로 쓰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끝없이 부탄의 정체성을 강조하지 않으면 나라 존립 자체가 힘들다는 판단을 지도층들은 갖고 있다. 또 옆 나라 시킴 왕국이 민족의식이 희박함에 따라서 인도에게 흡수당하는 것을 보면서 부탄의 독립을 지키기 위해서는 부탄만의 종교, 부탄만의 전통 의상, 부탄만의 문화, 부탄만의 풍습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